사는 게 맛있다 [세계일보]

살아가다 보면 하나씩 불만이 생겨나서 차곡차곡 쌓인다. 몸에 걸친 옷,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처럼 사소한 것에서부터 ‘나는 왜 이렇게 생겼나’ ‘우리 부모는 왜 돈이 많지 않은가’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왜 성과가 나지 않는 걸까’ 같은 어찌할 수 없는 사안 때문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때론 ‘사는 게 힘들다’고 고개를 떨군다.

그런데 ‘사는 게 맛있다’를 읽으면 내가 사는 삶은 사실 힘든 게 아니라는 어쩔수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삶에 비한다면 내 불만은 너무도 사소하고, 내 상태는 최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에는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이지선씨,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가수 강원래씨, 선천성 소아마비인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월드비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김혜자씨 등 장애를 지니거나 장애인을 돕는 인사 23명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이들은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사는 게 맛있다’고 나직하게 이야기한다.

대학교 4학년 여름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55%, 3도 화상을 입은 이지선씨.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투 끝에 기적적으로 삶을 되찾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서 있어도 눈에 띄는 아주 특별한 사람, 장애인이 된 것’이다.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터라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는 삶. 이지선씨는 그걸 깨달은 뒤 오히려 한가닥 희망을 품게 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지선·강원래씨, 박완서씨, 김혜자씨와 아이들

“더 떨어질 곳도 없는 바닥이기 때문에 이제 올라갈 일만, 시작할 일만,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소위 ‘깡’이라고 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이전에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맛있는 삶을 얻었습니다.”

이들은 바닥을 딛고 날아올랐다. 절망 끝에서 희망을 찾았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현재 척수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그는 ‘생명이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는 미국 속담을 들려준다.

“슬픔이 있지만 분명 희망도 존재하고 좌절이 있지만 기쁨과 행복도 존재하는 게 세상살이인데, 희망을 절로 주는 생명을 구태여 버릴 필요가 있을까. 석양에 예쁜 오징어배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이 세상, 정말 콩알만큼의 희망이 있어도 이 세상을 살만 하지 않을까.”

김혜자씨가 적은 시 ‘장애인들을 위한 산상수훈’(작자 미상)을 일부 옮겨본다. “우리의 도움을 구하는 이에게 복이 있나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일이므로.” 우리에게 희망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이들은 분명 ‘필요한 존재’다.

덧붙일 것 한가지. 책의 인세와 수익금은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비영리공익재단 푸르메재단에 전액 기부된다.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푸르메재단 후원의 밤에 모인 사람들

 

[세계일보 2005-12-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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