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재활전문병원 짓는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 [한겨레]


“정부 지자체 도움 없이는 그림의 떡”
교통사고로 부인 다리 잃자 장애인 도우미로
기자 꿈 접고 생맥주 사업해 번 돈 재단 세워

 

 

“장애인과 상관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누구나 어느 한 순간에 장애인이 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30만명이 후천적 장애인이 되지만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은 전국에 걸쳐 4천여개에 불과한 실정이죠. 비용이나 희생을 전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건데, 치료기간이 길어지면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짐을 덜어줘야 합니다.”

 

푸르메재단(purme.org)의 백경학(43·사진) 상임이사가 재활전문병원 건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년 전 외국에서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를 절단한 아내의 길고도 힘겨운 치료과정을 지켜보면서부터다. 〈기독교방송〉 기자였던 그가 1996년 가족과 함께 독일 연수를 떠날 때만 해도 그의 목표는 훌륭한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98년 귀국을 한달 앞두고 떠난 영국 스코틀랜드 여행길에서 부인 황혜경(41)씨가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게 되면서 그는 ‘장애인을 위한 삶’을 택했다.


그 사이 〈한겨레신문〉과 〈동아일보〉로 일터를 옮기기도 했지만 기자생활을 하면서 부인의 거듭된 수술과 재활치료 비용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다. 2002년 기자직을 포기하고, 독일에서의 경험을 살려 맥주를 직접 제조하는 옥토버훼스트라는 하우스맥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회사 마이크로브루어리코리아를 설립했다. 회사는 날로 번창했고, 부인의 병세도 점차 호전됐다. 가족의 삶도 안정을 찾았다. 그럼에도 그는 ‘2% 부족함’을 느꼈다. 결국 그는 2004년 8월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을 창립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그냥 그렇게 만족하면서 살 수도 있었지만, 99년 귀국 이후 경험한 국내 재활의료 현장을 직접 본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어요. 비좁은 병상에 다닥다닥 누운 환자와 부산한 가족, 불러도 대답이 없는 의료진과 엄청난 간병인 비용, 1시간30분 남짓한 치료시간. 우리나라의 병원은 유럽과는 차이가 있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안정과 재활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곳이었어요.”


궁극적으로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환자 중심의 재활병원이다. 가족이 옆에서 보살피지 않아도 입원기간 내내 의료진이 가족처럼 세심하게 보살펴주고, 하루 내내 원하는 시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만들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하면서 3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과 현금 1억원을 쏟아부었다. 다행히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이 재단 이사장,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와 강지원 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 등이 이사로 참여하면서 그의 꿈은 서서히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해엔 ‘세상을 만나는 또다른 시선’이라는 주제의 사진전과 ‘희망으로 한걸음’ 콘서트를 진행했다. 올해는 장애인 관련 사진전과 바자, 희망의 걷기 대회를 추진해 일반인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할 계획이다. 그렇지만 2009년까지 5천평 대지에 규모는 작지만 환자가 중심이 되는 50병상의 작은 병원을 짓겠다는 그의 꿈을 실현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재활전문병원 1호 건립이라는 첫 단추를 채우는 일이 난관에 부닥친 이유는 이 사업의 동반자여야 할 기업과 정부, 지방자치단체가 ‘기부’와 ‘홍보’를 등한시하고 있는 탓이다.


“외국만 해도 이런 병원을 짓는 데 건물은 중앙정부가, 대지는 지자체가 제공하거든요. 지금 계획으로는 1호 병원을 짓는 데 땅값을 제외하고 13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중앙정부나 서울시 같은 재정이 풍부한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체가 ‘푸른 산’을 뜻하는 푸르메처럼 인간 중심의 자연친화적인 병원을 짓는 일에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을 가진다면 2호, 3호의 푸르메병원을 짓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죠. 이들이 더 많은 지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김미영 기자

 

[한겨레]2006-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