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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5. 미국 부자와 한국 부자의 차이 [프레시안] 2006-7-26

[우리 곁의 재활병원] <5> 재단 건립의 와중에서

2006-07-26 오전 10:17:58

 

‘기자가 사업을 하면 망한다’는 말이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기자 출신으로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많지 않다. 국회의원과 대기업 홍보이사가 고작이다. 기자가 세상을 잘 알고 적응력도 뛰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 자기 일만 아는 ‘헛똑똑이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에 쫓기다보면 집 계약서조차 쓸 시간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세상살이에 익숙하지 않고 어눌했던 내게 사업적인 재능과 수완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기자생활을 10년 넘게 한 나와 이원식 씨가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모두 말렸지만 우리가 시작한 소규모 맥주제조사업은 다행히 망하지 않았다. 방호권 씨 손끝에서 빚어진 맥주의 맛이 뛰어난 탓도 있었지만 우리를 아는 많은 분들이 모든 약속과 만남을 ‘옥토버훼스트’에서 해주었고 홍보대사가 되어서 입소문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 옥토버훼스트 맥주공장 모습. ⓒ프레시안

사업이 3년째 접어들면서 ‘이제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기존의 대형 맥주회사의 똑같은 맛 대신 효모가 살아 있는 새로운 맛으로 승부하면서 ‘옥토버훼스트’하면 프리미엄 맥주, 맛있는 맥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한 고객은 ‘서울로 출장간다’는 이유를 대고 우리 맥주를 맛보기위해 찾아왔다. 그는 1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맥주를 주문했는데 ‘옥토버’ 맥주가 동났다는 설명을 듣자, 직원 멱살을 잡았다. “내가 산 넘고 물 건너 어떻게 여기를 왔는데…”하고 말이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재단 건립의 ‘첫 삽’

회사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다고 생각되자 나는 재단 건립을 위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장애인 문제에 애정을 가지고 병원 건립에 힘을 모아주실 분들이 필요했다. 박원순 변호사와 기자협회장이던 한겨레신문 이상기 선배를 찾아갔다. 박 변호사께서는 “이왕 재단을 설립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고, 이 선배는 “각계를 대표하면서 사회적으로 신망이 높은 분들을 모시라”고 조언했다.

재단 이사장으로 종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신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님을 모시기로 했다. 이사로 청소년 문제에 열정을 바치고 계셨던 강지원 변호사님과 성철 스님의 상좌이셨고 불교 청소년단체를 이끌고 계신 원택 스님, 서강대 김용해 신부님, 박원순 변호사, 조인숙 다리건축대표를 모셨다. 내가 몸담았던 언론계에서는 안국정 SBS 사장, 이정식 CBS 사장, 김성구 샘터사 사장, 이상기 기자협회장이 이사로 선임됐다. 나중에 동아일보 김학준 사장께서도 흔쾌히 동참하셨다. 다음날부터 나는 차례로 한분씩 찾아뵈었다. 모두 바쁘신 분들이라 설명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는 입사 면접을 보듯 우리가족이 외국에서 겪은 경험과 장애인이 되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설명하고 이사직 수락을 요청했다. 처음부터 승낙하신 분도 있고 주저하다가 내 얘기를 듣자 눈물을 흘리며 흔쾌히 손을 잡아주신 분도 있었다. 다행히 모두 동의하셨다.

▲ 김성수 이사장님과 함께. ⓒ프레시안

하지만 김성수 총장님은 쉽지 않았다. 김총장님은 1973년 정신지체 어린이 특수학교인 ‘성베드로 학교’를 성공회대 안에 만드셨고 유산으로 받으신 강화도 온수리 땅에 정신지체 장애인 공동체 ‘우리마을’을 건립하는 등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위해 온 힘을 쏟고 계셨다. 어렵게 요청 드렸지만 “사회연대은행과 성베드로학교 등 맡은 단체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데 푸르메재단까지 너무 버겁습니다.”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었다. 고심 끝에 성공회대에 재직 중인 진영종, 조효제 교수에게 SOS를 쳤다. 두 분은 총장님을 설득하기 위해 아예 총장실을 점거한 채 농성을 하다시피 했다. 그러기를 이틀째, 핸드폰이 울렸다. 진영종 선배였다. “경학아! 축하한다. 드디어 김 총장님께서 백기를 드셨다.”

2004년 8월 17일 한국프레스센타 19층에서 작은 모임이 열렸다. 푸르메재단의 창립발기인대회였다. 김성수 총장님을 비롯해 강지원, 박원순 변호사님 등 모두 열 한 분이 이사로 위촉됐다. 김 총장님은 상기되신 표정으로 “작은 물방울이 모여 강물을 이루고, 조그만 벽돌이 모여 거대한 성채를 이루듯 장애환자를 위한 아름다운 재활전문병원을 건립할 때까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자”고 당부하셨다. 드디어 나와 아내가 꿈꿔 오던 재활전문병원을 만들기 위한 ‘푸르메재단’이 닻을 올린 것이다. 아내는 이날 밤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다리가 수많은 다리로 재생할 것을 믿으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엔 왜 장애환자를 위한 시설이 그토록 적은 걸까?”

80년대와 90년의 이슈가 ‘정치적 민주화’와 ‘부의 분배’였다면 2000년대 들어 ‘나눔’이 우리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들이 조금씩 내 자식, 내 가족뿐 아니라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곳이 나는 단연 아름다운재단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재단은 설립 6년 만에 회원 3만명과 이들이 내는 기금 100억 원이 넘는 단체로 성장했다.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월급의 1%를 쪼개서 어려운 이웃을 돕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것은 이 기금이 지속적인 사업과 항구적인 시설을 위해 투자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극빈층과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은 아름다운재단과 사회공동모금회 등 각종 사회단체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지만 장애와 질병, 가난이라는 삼중고 시달리고 있는 장애환자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과 사회공헌을 주장하는 대기업들도 유독 장애환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인색하기만 하다.

이웃인 일본만 하더라도 장애환자의 상황이 크게 나을 뿐더러 시민과 기업의 봉사활동이 일상화되고 있다. 24개區를 가진 오사카市의 경우, 26개의 일반 재활병원과 4개의 어린이재활병원 등 모두 30개의 재활병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의 4배 규모다. 고베시의 경우, 고베 시장이 노르웨이를 방문한 뒤 서구복지제도에 자극 받아 1982년 총 62만 평의 부지에 장애인종합복지타운 ‘행복촌(幸福村)’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재활병원과 노인병원, 양로원, 공원, 호텔, 온천장, 직업훈련소 등 34개 건물이 들어서 있고 고베시로부터 위탁받은 의사협회와 복지회 등 민간단체가 운영하고 있다. 토요타와 소니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매년 이곳에서 직원연수를 겸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들의 활동에 공감해 일본 국민들은 휴가를 받으면 이곳에서 와서 산책을 하거나 장애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연간 이용객수가 200만 명을 넘고 있다. 기업과 장애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삶의 현장이다.

▲ 고베 행복촌. ⓒ프레시안

우리 상황은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에는 매년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통사고와 각종 산업재해, 뇌졸중 등으로 하루아침에 후천적인 장애인이 되고 있고 이중 140만 명은 어떤 형태로든 정기적인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재활전문병원은 전국을 통틀어 손을 꼽을 정도다. 지방에 있는 작은 의원까지 합해도 병상수는 4000개에 불과하다. 통탄할 노릇이다. 부자들은 장애가 찾아오면 외국 병원으로 떠나고, 1인실에 입원해 특별대우를 받으며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일반 시민은 전국 병원을 전전해야 한다.

미국 병원에서 일하다 귀국한 한 의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정부의 무관심한 장애인 의료정책을 비판하면서 “국정을 맡고 있는 최고 책임자와 당국자가 장애인이 돼야 정부의 정책이 변할 것”이라고 한탄했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가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다면 아마 1년 안에 각 시도마다 재활병원이 들어설 것이다. 아니, 외국의 좋은 시설을 찾아 떠나고 서민만 고통 받을지도 모른다.

“TV에서 보던 불행이 바로 내 이야기야”

▲ 성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책을 전달하며 2005. 12. ⓒ프레시안

이런 점에서 최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 빌 게이츠에 이어 워런 버핏이 우리 돈으로 35조 원(370억 달러)을 기부했다는 소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자라고 돈이 아깝지 않으랴. 미국의 자린고비 중 최고 구두쇠로 통하는 버핏이 평생 모은 재산의 85%를 흔쾌히 기부했다니 보통사람으론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의 결단에 감동받은 미국 부자들이 줄줄이 기부를 준비하고 있다니 ‘기부도 전염성이 강한가’ 보다. 미국의 기부행렬은 강철왕 카네기와 석유로 돈을 벌어 시카고 대학을 세운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를 거쳐 게이츠와 버핏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부자의 기부가 빛을 발하는 이유는 우리처럼 사회적 물의에 대한 속죄의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재산을 미련 없이 내놓고 박수를 받고 떠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부자는 돈의 가치를 아는 부자다.

올 들어 우리사회에도 대기업의 기부가 줄을 잇고 있다. 상속논란을 빚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8000억 원의 사회헌납을 선언했고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비자금사건으로 1조 원의 사회기부를 약속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식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려다 낭패를 봤다. 다른 기업들도 이미지 개선을 위해 대규모 기부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잘못된 지난 일이야 할 수 없고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의 부자와 기업들도 박수를 받으며 기부하는 전통을 세울 수 없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잃은 이건희 회장의 비통함과 두 번씩 구속된 정몽구 회장의 고통과 같은 것들을, 이 땅에 사는 가장 어려운 장애환자와 그들의 재활을 약속하는 데에로 승화할 수는 없을까 말이다.

얼마 전 고교동창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왕따를 당하자 3년전 미국 누나 집으로 아들을 유학 보낸 친구였다. 아이는 미국 학교에 잘 적응해 친구도 많이 사귀고 최근에는 대통령 장학생으로 선발됐다고 한다. 백악관으로 아들이 초청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는 통화에서”아들이 심장마비로 숨져 오늘 싸늘한 주검이 되어 귀국했다”고 울먹였다. 충격적이었다. 문상을 갔지만 자랑스러운 자식을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동창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왕래가 없어 10년만에 만난 친구였다. 세상 얘기를 하다 집안 안부를 물었다. “제수씨는 건강하지?” 친구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내가 혹시 잘못 물었나?’ “벌써, 죽은 지 10년이 됐어”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친구는 “삼풍백화점 사고 당일 아내가 쇼핑할 것이 있다고 해 백화점에 데려다 주었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어. 임종이라도 지키고 시신이라도 찾았다면 죽은 걸 믿겠는데….” 그 친구는 “오늘밤이라도 아내가 불쑥 찾아올 것 같아 10년 동안 이사도 못가고, 재혼도 안하고 아이와 단 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인생이 소설 같아, TV에서나 보았던 불행이 바로 내 이야기야.” 그날 밤 나는 친구의 불행을 위로하며 소주를 마시다 영안실을 빠져나왔다.

‘관청의 문턱’에서 서성이다

발기인대회를 마치자 재단설립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정관을 비롯해 이사진의 이력서, 인감증명서, 취임승락서, 의사록 등 서류가 갖추어지자 나는 보건복지부 담당부서를 찾아갔다. 발 벗고 도와주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담당자를 만나자 실망감과 분노가 치밀었다.

▲ 푸르메재단 발기인대회. ⓒ프레시안

담당자는 ‘돈도 없이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는 투로 “사업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기본재산이 있어야 재산설립 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대기업이 수백억 원을 출연한 재단만 재단이냐. 우리는 빈손에 가까운 3억원으로 시작하지만 정말 장애환자들이 필요한 일을 하겠다”고 설득했지만 ‘허가를 받기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오래전 허가 난 일부 재단들이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하면서 재단 허가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것이다. 담당자는 “푸르메재단의 설립취지는 이해하지만 기본재산이 최소한 10억 원이 넘어야 하며 이사진 수와 정관의 문구까지도 보건복지부에서 지시한대로 수정해야 허가를 검토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관청의 문턱이 높다는 것은 알았지만 한숨이 나왔다.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관청 앞에 민원인이 왜 작아질 수밖에 없는지? 김성수 총장님과 강지원 변호사님을 찾아 상의 드렸지만 별 뾰족한 대안이 있을 리 없었다. 시름에 잠겨 있던 나를 보고 아내가 제안했다. “피해보상을 받으면 이 중 절반을 재단에 출연하면 되잖아요?”


백경학/푸르메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