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독일 유학생 부부의 고민

[기획연재 ①] 수술받으러 한국에 가야 하나

청각장애아 둔 독일 유학생 부부, 한 달에 360유로씩 내고도 병원이 무섭다

▣ 뮌헨=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독일에 사는 수정이(가명·4)는 청각장애 아동이다. 이국에서 만난 병은 수정이 가족을 비국민으로 거칠게 갈라놓았다. 어머니 김성희(가명·37)씨가 수정이의 청각장애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월. 2005년 11월 대학 박사 과정에 있는 남편 최정수(가명·41)씨가 40살 이하 조건의 U사의 보험에 가입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U사 보험은 법정보험에 들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입한 한 달 320유로(41만6천원)짜리 민간보험이었다.

 
△ 독일의 보험체계는 유학생 등 외국인에게 불리하다. 뮌헨의 한 건물 복도를 휠체어를 타고 지나가는 소년과 보호자.

오진·과다 청구·끝없는 기다림…

U사 보험은 민간보험이기에 병원에서의 대접은 남달랐다. 지난해 1월 이상을 느끼고 찾은 이비인후과,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왔다고 진료를 할 수 없다던 의사는 원무과 직원과 상의한 뒤 오후 5시 정밀검사를 잡아줬다. 그사이 동상에 걸린 것으로 보이는 아이 발을 보이러 소아과에 가서 알레르기 진단을 받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아이의 귀에 이상이 있다는 말을 건네자 의사는 잘 아는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있다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곧 그 병원으로 간 수정이는 줄 서 있는 사람들보다도 일찍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는 중이염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해야 한다며 4월 D시립병원 수술 예약을 해주었다. 그런데 곧 처음 간 이비인후과에서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전화 진료비 명목하에 129유로가 적혀 있었다. 항의하자 상대방은 다짜고짜 수화기를 내려놓았고, 보험회사에 문의하자 하루에 같은 병명으로 두 병원에 갔으므로 이후 청구된 진료비는 낼 수 없다고 했다. 가산금까지 159유로를 물어야 했다.

 

4월11일 수술했지만 수정이의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었다. “괜찮아졌다. 높은 음역을 듣지 못할 뿐이다”라는 의사의 말은 믿을 수 없었다. 급하게 대학병원 예약을 했지만 7월 초에나 진료시간이 잡혔다. 결국 내려진 진단은 ‘청력 손상’. 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계속하던 2006년 11월 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U사가 40살 미만 조건을 내세우며 계약 해지를 요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회사에서 다른 조건의 보험으로 연장이 가능하지만 가족 내 큰 병이 있었기에 보험회사로서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W보험회사의 외국학생보험에 가입했다. 한 달 보험료는 360유로(46만8천원)였다. 원래 가입한 뒤 3개월간은 거의 혜택을 받지 못하므로 수술을 미루고 있었다. 3개월이 되는 3월1일 대학병원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진료를 받아라, 수술을 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김성희씨는 말했다. “곧 갈 것이다. 수술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보험회사에서는 수술비는 물론 언어치료비 등 여타 비용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법정보험이 가능하도록 법이 바뀌었지만…

김성희씨는 애가 탄다. 만 4살 이전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듣더라도 영원히 언어 감각을 잃을지 모른다. 수정이는 곧 만 4살이 된다.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4월1일자로 바뀐 보험법. 이 조치로 법정보험에 들 수 없던 자영업자나 외국 유학생 등의 가입이 가능해졌다(이 조치에는 전국민의 법정보험 의무가입이 포함되었다. 고소득자들이 법정보험을 빠져나가는 것이 재정 악화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다. “재산증명서 등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10가지가 넘어요.”

 

김성희씨는 딴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와우관 수술을 한쪽만 할 경우에 보험이 적용된다. 독일 영주권을 획득하지 않았으므로 한국에서 보험에 가입한 친척을 통해 보험 보장을 받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선진 독일의료보장체계보다 한국 상황이 더 나을 수 있는 것이다. 김성희씨는 한국의 인터넷 카페에 아이의 사정을 설명하는 글을 올렸다. 밤중인데도 댓글이 무수히 올라왔다. 어머니들의 충고가 가슴을 친다. “한국도 그렇게 이른 시일 내에 수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수술비 외 기계 값이 2200만원이던데….” 은혜롭다는 독일 보험이 김성희씨 부부는 원망스러울 뿐이다. 김성희씨가 이야기하는 내내 말 끝마디에는 울음이 섞였다. “보험이 된다는 보장도 없이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고 너무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