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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불굴의 ‘대한 말아톤’ 시드니 드림 이루다

불굴의 ‘대한 말아톤’ 시드니 드림 이루다

 

누구는 앞이 안보였고, 누구는 다리가 없었다. 하지만 달리는 데에는 장애가 없었다. 세상의 편견이라는 장애물마저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호주 시드니 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김세진군(11·오른쪽)과 어머니 양정숙씨(38)가 지난 23일 하버브리지를 건너는 도중 나란히 손가락을 들어올려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김준일기자

 

지난 23일 우리나라장애인 7명이 호주 시드니마라톤대회에서 일반 외국 선수들과 함께 달렸다.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과 에쓰오일의 후원으로 장애인들이 평소 꿈꾸던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씨(25)와 장애인 최초로 트라이애슬론을 완주한 시각·청각장애인 차승우씨(44) 등 장애인 7명은 비장애인 도우미들과 함께 스스로에게 약속한 레이스를 한명도 빠짐없이 완주했다.

김세진군(11)은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와 한쪽 손가락이 없었다. 하지만 국내 장애인 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11개를 획득했고 올해 독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자유형 50m 은메달을 땄다. 이번에는 가족마라톤 코스 4㎞를 완주했다. 사실 김군에게 4㎞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반 초등학교에서 대안학교로 옮길 때의 설움에 비하면 힘든 것도 아니었다.

김군을 갓난아기때 입양한 어머니 양정숙씨(38)는 “세진이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남들과 똑같이 대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진군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싶다”며 웃었다.

지체장애인 변정수씨(44)는 처음으로 외국을 나왔다. 19살때 선천성 곱사등이 치료 수술을 했다가 후유증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눈앞이 깜깜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5번 목을 맸지만 그때마다 구조됐다. “너보다 불쌍한 사람도 많단다. 너 스스로를 사랑해라.”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힘을 얻었다.

결국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변씨는 이번 대회 휠체어 부문 하프코스에 홀로 출전해 완주했다. 경쟁없는 금메달이었다.

소아마비로 한살 때부터 장애를 갖게 된 전승훈씨(42)는 마라톤을 시작한 지 3년밖에 안됐지만 불굴의 의지로 국가대표급 선수가 됐다. 풀코스에 출전해 은메달을 목에 걸고 상금도 60만원을 받았다. 전씨는 “신혼여행을 못간 아내를 위해 결혼 10주년 여행비용으로 상금을 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전씨와 변씨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80년대 말 이들은 서울 정립회관에서 근로자로 같이 일했다. 이후 한명은 서울에서, 한명은 거제도에서 떨어져 살았다. 그리고 20여년 만에 다시 만났다. 둘은 의형제를 맺었다.

코스 중간중간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시각장애인 이윤동씨(51)의 도우미로 나선 김정길씨는 풀코스 25㎞ 지점에서 다리에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안마사인 이씨가 김씨의 다리를 수십분간 주물렀다. 둘은 손을 꼭 붙잡고 결승선을 넘었다.

김정길씨는 “이윤동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완주할 수 없었다”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됨을 느낄 수 있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시드니|김준일기자 ant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