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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현대차 사회공헌기금 이렇게 쓰자

현대차 사회공헌기금 이렇게 쓰자

지자체 공연장도 ‘개점 휴업’교통사고 장애인 위해 썼으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출연한 기금을 운영할 사회공헌위원회가 최근 활동을 시작했다. 정 회장의 사회공헌기금은 올해부터 2013년까지 매년 1200억원씩 총 8400억원이 출연된다고 한다.

나는 지난 9월 법원이 정 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은 현실의 벽을 느꼈다. 사회공헌기금 약속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왕에 조성된 기금이 바른 곳에 제대로 사용됐으면 했다.

그러나 이 기금으로 오페라하우스와 문화센터를 건립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가 이제는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한국정책학회의 발표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도 등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연장은 140개에 이르며 30개가 새로 건립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1년에 열흘 안팎 공연하는 사실상의 ‘개점 휴업’ 상태이다.

정 회장이 몇달 간의 고심 끝에 낸 ‘피 같은 기금’이 제대로 관리도 되지 않을 시설을 짓는 데 쓰인다니 국민들이 박수칠지 의문이다.

현대기아차 사회공헌위원회가 현장의 목소리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많다. 예를 들어 가난과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저소득 환자를 위한 재활병원도 몇 개나 지을 수 있다. 교통사고와 질병으로 하루 아침에 장애인이 되는 사람들이 매년 30만 명이 넘고,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못 구해 전국을 떠돌고 있다.

최근 푸르메재단이 건립해 운영 중인 장애인치과만 해도 일반 치과에서 진료를 거절당한 장애인들이 부산과 창원 등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다. 한 환자는 치료비가 없어 이중 75%는 재단에서 부담하고 25%만 내라고 했는데도 치료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실직과 질병, 생활고로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대기아차의 오페라하우스가 어떻게 비춰질지 의문이다. 자동차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 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다면 얼마나 가치 있을까?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상징적인 건물을 지어 이름을 남기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국민들이 납득하고 박수칠 수 있는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이재원·푸르메재단 간사
입력 : 2007.10.29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