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장애청소년들, 천지의 미소에 희망을 품다

장애청소년들 ‘천지의 미소’에 희망을 품다

2008년 09월 09일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백두산 트레킹’ 동행 르포

“백두산!” “도전!”

지난 5일 낮 12시15분 백두산 서파 코스 입구 주차장. 장애 청소년 8명을 포함한 일행 36명이 머리를 맞대고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탄 버스는 구불구불한 2차선 도로를 달리며 정상으로 향했다. 자작나무 군락을 지나 능선에 가려졌던 산 아래 벌판이 눈 밑에 펼쳐지자 일행들은 모두 “와”하는 감탄사를 외쳤다.

엄홍길 대장과 장애 청소년 등 백두산 트레킹 참가자들이 지난 5일 백두산 천지에서 등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두산 | 오동근기자>

버스에서 내린 이들 앞에 ‘천지까지 900m’라는 표지판과 계단이 보였다. 고개를 드니 멀리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해발 2500m가 넘는 고산지대라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이 제법 쌀쌀했다.

옷깃을 여며쥐고 계단을 오르길 30여분. 예측불가능한 날씨 때문에 1년 중 몇차례만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가 장관을 드러냈다. 일행들 입에선 탄식이 절로 나왔다. 김소연양(14)은 “백두산 등반 중에 너무 힘들어서 가마를 타고 싶었지만 ‘힘들어도 끝까지 올라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정상에 올라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나눔재단과 푸르메재단이 주최한 ‘장애청소년과 엄홍길 대장이 함께하는 백두산 트레킹’이 지난 4~7일 동안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들이 남아있는 지린(吉林)성 등지를 답사하는 일정으로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는 정신지체나 발달장애를 가진 장애청소년 8명과 산악인 엄홍길씨(48),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씨(26) 등이 함께 했다. 기업인이나 재단 관계자 등은 장애청소년들의 1 대 1 멘토로 참여했다.

엄 대장은 첫날 강연에서 등반 중 크레바스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다 줄이 감겨 발목이 돌아간 일, 산행을 하면 평생 불구로 지내야 한다는 의사의 경고를 듣고도 다시 산행을 결심한 일 등을 장애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총 18번의 등반을 실패하고 10여명의 동료를 잃었지만 만약 거기서 포기했다면 내 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며 “자신의 꿈을 위해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전기기사로 일하다 감전사고로 양손을 잃고 의수화가로 새로운 삶을 개척한 석창우 화백도 동참했다. 석 화백은 커다란 화선지에 붓을 놀려 일행들의 모습과 정호승 시인의 시 ‘백두산’을 담았다. 아이들은 화백이 의수로 화폭을 채우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이들은 6일 고구려의 옛 수도이자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대인 지안(集安)시를 방문해 환도산성과 광개토왕릉비, 압록강 등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연세대 하일식 교수의 현장 역사 강의에 빠져들었다. 김윤상군(12)은 “아름다운 북한 여성들의 공연과 압록강을 직접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말했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는 “매일 버스로 5~10시간 이상씩 이동해야 하는 힘든 일정인데도 아이들이 끝까지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며 “장애라는 어려움과 열등감을 이번 기회에 자신감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백두산 | 오동근기자 trustno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