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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앞 못보는 순영씨 도우미 없이 베를린 마라톤 감동 완주

앞 못보는 순영씨 도우미 없이 ‘감동 완주’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 세워진 베를린 그날 그곳에서…

2008-09-30

마라톤 경력 2년 추순영씨

30㎞ 지점서 도우미 발에 쥐나자 혼자 달려
다음 목표는 사하라 사막… “포기란 없어요” 

▲ 28일 독일 베를린국제마라톤에 참가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추순영씨가 태극기를 들고 달리고 있다. /푸르메재단 제공
28일 오후 1시40분(현지시각), 독일 베를린마라톤의 결승 지점인 브란덴부르크문(門)으로 손목에 파란 끈만 대롱대롱 매단 채 시각장애인 추순영(여·36·시각장애 2급)씨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출발할 때부터 옆에서 같이 뛰었던 도우미는 보이지 않았다. 도우미는 30km 지점에서 발에 쥐가 나 뒤처진 것이었다. 손목에 끈을 묶고 함께 뛰면서 방향을 가르쳐주고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이끌어주는 도우미 없이, 앞을 잘 못 보는 순영씨 혼자 나머지 12㎞를 달려온 것이다.이날 기록은 4시간10분대였다. 지난 3월 세웠던 최고기록 3시간53분보다는 20여분 늦었다. 순영씨는 “길을 안내하는 도우미가 끝까지 옆에서 지켜줬더라면 좀더 기록을 앞당겼을지 모른다”고 아쉬워했다.

쥐가 난 도우미의 발을 주물러도 보고, 다른 한국인 선수가 지나가길 기다려 길 안내를 부탁해 보려고도 했지만 허사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요. 앞사람 등같이 생긴 게 있기에 그것만 따라서 냅다 뛰었어요.”

결승점에서 얘길 전해들은 다른 시각장애 마라토너들이 웃으며 물었다.

“역시 대단하네. 순영씨, 진짜 시각장애인 맞아?”

순영씨의 ‘감동의 마라톤’

이날 순영씨는 세계 5대 마라톤대회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마라톤 여자 부문에 출전해 42.195km를 완주했다. 일반인 부문에서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2시간3분59초로 세계 최고기록을 달성한 이번 대회에는 장애인재활병원 설립을 추진중인 푸르메재단과 에쓰오일의 후원으로 순영씨를 포함해 시각·지체·발달장애를 안고 있는 한국인 마라토너 7명이 출전기회를 얻었다.

순영씨는 국내 여성 시각장애인 중 유일하게 마라톤 풀코스 공식 기록을 갖고 있는 인물. 지난 2년간 풀코스를 6번 완주했고, 그 중엔 더운 여름날 산길을 달리는 ‘혹서(酷暑)기 마라톤’도 있었다.

순영씨가 속한 ‘한국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 회원 80여명 중 여성회원은 10여명이지만, 순영씨 이외의 여성회원들은 10km나 하프코스 기록만 갖고 있다. 일반인도 특별한 준비와 훈련 없이는 풀코스를 완주하기 어렵기 때문에, 훈련할 때 도우미가 항상 필요한 시각장애인들은 쉽게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순영씨 역시 그런 이유로 2년 전까지는 마라톤에 나서 본 적이 없었다. 한 시각장애인 육상대회 10km 부문에 재미로 나갔다가 1등을 해버린 뒤, 정식으로 마라톤 훈련을 시작했다.

“달리면서 맑은 공기 느끼고, 길거리 풍경 상상하는 게 좋았어요. 풀코스 뛰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2m 내 물체의 형태만 분별할 수 있는 순영씨에게 그것은 이루기 어려운 ‘욕심’이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두 번 남산에서 자원봉사 도우미들과 연습하면서 조금씩 욕심에 다가갔다. 나중에는 그것만으론 훈련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테니스코트를 찾아 하루에도 수백 바퀴씩 돌고 또 돌았다. 산책로나 길거리에서 혼자 뛰면 길바닥이 울퉁불퉁해 넘어지거나 행인과 부딪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외롭고 지루한 훈련 끝에 지난해 11월 처음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순영씨는 엉엉 울면서 달렸다고 한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나도 해낼 수 있구나, 잘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싶었어요. 남들은 내가 힘들어서 우는 줄 알았지만, 사실 저는 혼자 감격해서 35km 지점부터 펑펑 울면서 뛰었어요.”

다음 목표는 사하라 사막

순영씨는 ‘선천성 시신경 위축장애’로, 태어날 때부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10세 때 수술을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어렸을 땐 고향인 목포에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밭에 열린 참외며 딸기를 죄다 따먹어서 동네의 소문난 ‘말괄량이’로 통했고, 맹학교에 들어가서는 웅변을 배웠다. 1988년·1996년 올림픽 땐 골볼(방울이 든 공을 상대편 골에 넣는 시각장애인 경기)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스스로 장애를 의식하지 않으니,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제가 당당하니까 남들도 헷갈려 해요. 제가 어디 부딪히거나 뭘 떨어뜨리면 우리 가족들도 ‘넌 그것도 안 보이냐?’ 했다가 ‘아, 너 정말 안 보이지’ 한다니까요.”

그러나 늘 씩씩하고 당찬 순영씨도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릴 때가 있다. 큰아들 성윤(11)이가 친구로부터 “너네 엄마, 아빠는 장애인이잖아”라며 놀림을 받고 온 날(순영씨 남편은 장애인 국가대표 역도선수 봉덕환씨), 순영씨는 아들을 안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빠에게 장애가 있는 건 사실이야. 그렇지만 사지 멀쩡해도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해서 남을 속이거나, 괴롭히거나, 법을 어겨가며 돈을 버는 사람들도 세상엔 얼마나 많니. 성윤이가 엄마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친구들이 놀리더라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시각장애가 없었다면 여군이나 여형사가 됐을 것 같다”는 순영씨는 언젠가 6박7일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아들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말리기에 제가 말해줬어요. 엄마는 불사조라고. 엄마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까, 반드시 해낼 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