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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걷다 쉬다 울다… 다시 달린 7시간22분, 내 골인점은 ‘희망’이었습니

피부호흡 못해 금세 지쳐… 21km 지나서 주저앉아 누군가 “Go Korea”
한걸음 한걸음 다시 출발… 결승점 통과하니 왈칵 눈물


건강한 사람도 힘든 42.195km 마라톤.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31)가 2일 열린 2009 뉴욕마라톤에 도전했다. “희망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그는 풀코스 첫 도전에서 7시간 22분 만에 완주에 성공했다. 이미 주위에 어둠이 깔린 가운데 결승선을 통과한 이지선 씨가 태극기를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뉴욕=양종구 기자

“지선 씨, 힘들면 10KM만 갔다가 지하철 타고 와요.”

뉴욕시민마라톤을 앞두고 푸르메재단 백경학 이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라도 완주하겠다고 결심했던 터였다. 하지만 전날 마라톤 고수들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마라톤 코스를 차로 돌아보면서 결연했던 의지는 어느새 걱정으로 바뀌었다. ‘도저히 안 되겠으면 지하철을 타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손은 주머니 안의 지하철 카드를 만지고 있었다.

새벽부터 세계 각국의 마라톤 마니아 4만 명이 모였다. 엄청난 인파에 놀랐지만 무엇보다 인간 한계를 시험한다는 마라톤을 축제처럼 즐기는 모습은 그간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던 내게는 별천지였다. 그룹별로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나 역시 자꾸만 운동화 끈을 고쳐 매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뉴욕시민마라톤은 스태튼 섬의 끝자락에서 출발해 베라차노 내로스라는 브루클린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우리 일행은 나와 함께 푸르메재단의 재활병원 설립 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이번 대회에 참가한 장애인 마라토너 4명과 도우미 2명. 다리에 반도 못 미쳐 나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고 호흡은 가빠졌다.

일행을 먼저 보내고 겨우 다리를 건너 도착한 브루클린 길가는 응원하는 시민과 밴드의 연주로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다. 흑인과 멕시칸 등 다양한 인종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응원을 받으면서 뉴욕이라는 곳이 정말 여러 색깔을 갖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레이스 초반에는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면서 15km를 왔다. 21km 지점을 통과한 뒤 ‘퀸즈버러 다리를 넘으면 맨해튼까지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무릎 위까지 올라왔다. 가까스로 맨해튼에 들어오니 다리를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너무 힘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한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무모한 도전을 끝낼 시간이었다. 그만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주위에서 나를 보며 ‘Go Korea(한국 파이팅)!’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마라토너들이 힘내라며 바나나를 건넸다. 신기하게도 힘이 났다.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어느새 브롱크스를 앞두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반환점 부근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렸던 ‘Almost there(거의 다 왔어요, 힘내요)!’라는 말은 의사 선생님이 아파하는 나에게 “이제 거의 다 끝났어”라고 하는 얘기 같았다. 희망을 갖고 한 발짝씩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센트럴파크가 보였다. 이제 7km만 더 가면 결승점이었다.

센트럴파크 입구에서 ‘이지선 파이팅! 푸르메재단 파이팅!’이라고 쓴 피켓이 보였다. 오랜 시간 나를 응원하며 기다려준 사람들. 그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결승점으로 향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졌다. 10km도 걸어본 적 없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리의 끝에 도착하니 눈물이 솟구쳤다. 백경학 이사님이 주신 태극기를 흔들며 골인했다. 7시간22분 동안 벌인 나 자신과의 싸움. 불가능해 보였지만 해냈다. 포기하고픈 순간을 넘어서니 기적은 일어났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됐다. 수많은 고비가 오지만 참고 견디면 꿈은 이루어진다. 푸르메재단이 경기 화성시에 건립하는 민간재활병원 건축비로 약 350억 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2000명의 후원으로 모아진 돈은 27억 원. 민간재활병원 건립은 내가 마라톤 완주에 도전했던 것처럼 허무맹랑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내가 걷고 달려온 길처럼,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이 있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 나의 완주가 푸르메재단의 꿈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또 세상에 지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뉴욕에서>
to.ezsun@gmail.com

:이지선 씨:
이화여대 4학년 때인 2000년 교통사고로 신체 55%에 3도 화상을 입은 그는 40여 차례의 수술을 이겨내고 밝은 삶을 살고 있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그는 격주 월요일마다 본보 건강·의료면에 ‘이지선의 희망 바이러스’ 칼럼을 연재 중이며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 힘든 고비에서도 밝은 표정… “장애인병원 설립 도움됐으면…”
■ 기자가 함께 뛰며 본

이지선 씨(오른쪽)와 함께 레이스를 펼친 본보 양종구 기자가 뉴욕시민마라톤 출발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푸르메재단

“중환자실에 들어왔을 때를 생각하고 달려!”

김황태 씨(31)는 출발한 지 3km 만에 힘들어하는 이지선 씨(31·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석사과정)를 독려했다. 김 씨는 2000년 7월 말 이 씨가 교통사고로 온몸의 55%에 3도 화상을 입고 서울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한 열흘 뒤 2만 V 감전 사고를 당했다. 그는 당시 양팔을 잃고도 마라톤에 의지해 장애를 극복했다. 김 씨는 서브 스리(3시간 이내)까지 기록한 마라톤 마니아. 이 씨는 김 씨의 충고를 곱씹으며 2일 열린 뉴욕시민마라톤에서 7시간22분 만에 완주하며 인간 승리 드라마를 썼다.

“25km 지점에서 다리가 빠져나갈 듯한 고통이 찾아왔어요. 황태 씨가 한 말이 힘이 됐어요. 9년 전에는 죽는 것처럼 힘들었지만 오늘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끝까지 이를 악물고 완주했죠.”

기자와 함께 달린 이 씨는 1km도 안 돼 “힘들어 못 달리겠다”며 걷기 시작했다. 피부가 손상되면 피부 호흡에 문제가 있어 조금만 달려도 호흡이 가쁘다. 그는 “400m를 달려본 적이 있는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결국 이 씨는 달리기보다는 빠른 걸음을 택했다. 10km를 넘어 20km를 향해 가면서 힘든 고비도 있었지만 얼굴 표정은 밝았다. 주위에서 “힘내라”고 하면 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줬다. 25km 고비를 넘기고 30km에 이르렀을 때 시간이 너무 늦어 코스가 폐쇄됐지만 그는 나머지 참가자들과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2005년부터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이 씨는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재단의 취지를 널리 알리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걸어서라도 완주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씨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자리를 지킨 300여 시민은 박수와 갈채로 축하했다. 이 씨와 함께 김황태 씨, 시각장애인 신현성 씨(48), 청각장애인 이수완 씨(40),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김용기 씨(34)도 모두 완주했다.

국내 최초로 장애인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푸르메재단은 경기 화성시로부터 600억 원 상당의 용지를 기증받았다. 350억 원의 병원 건립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모금과 관련한 문의는 푸르메재단 홈페이지(www.purme.org)로 하면 된다.

뉴욕=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