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소망담은 풍등 띄우며 “꿈아 이루어지렴”

소망담은 풍등 띄우며 “꿈아 이루어지렴”

장애청소년들 11명 거제도로 ‘희망여행’
푸르메재단 등 후원… 모처럼 세상밖서 ‘까르르’
바다서 건진 생굴도 ‘꿀맛’
27일 새벽 경남 거제시 학동 몽돌해수욕장.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하늘에 빨강, 노랑, 초록색 풍등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새해 소망을 가득 실은 풍등이 서서히 하늘 위로 떠오르자 11명의 장애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두 눈은 하늘 위로 날아가는 풍등을 좇느라 여념이 없었고, 서서히 하늘의 별이 되어가는 풍등을 바라보느라 고개가 뒤로 넘어가는 줄도 몰랐다.
◇27일 푸르메재단이 주최한 ‘장애 청소년과 함께하는 2010 거제도 희망여행’에 참가한 학생들이 경남 거제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 풍등을 띄우며 소망을 빌고 있다.
지적장애 3급인 박경인(16)양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웃음치료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풍등에 적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와 헤어진 뒤 장애 청소년들과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박양은 “해운대에서 태어나 어릴 때 엄마와 바다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며 “바다를 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박양은 풍등에는 차마 적지 못했던 “엄마가 보고 싶다”는 가슴 속 소망도 풍등에 담아 날렸다.
이번에 대학을 가는 유강현(19·청각장애)군은 “처음 시작하는 대학 생활을 아무 탈 없이 보낼 수 있게 도와달라”는 바람을 담아 풍등을 띄웠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하게 된 유군은 풍등에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신의 모습을 유려한 솜씨로 그려 넣었다. 고교 3학년이 되는 신소연(18·청각장애)양도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적었다.
청각·시각·발달 장애 등을 가진 청소년 11명이 지난 26일부터 1박 2일간 거제도로 겨울 나들이를 떠났다. 푸르메재단이 지난해 10월부터 아르코미술관과 함께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장애를 딛고 세상을 비추는 빛을 형상화한 창작 조명 작품들을 만들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여행은 일종의 졸업여행으로 굴 양식회사 중앙씨푸드의 후원으로 진행됐으며 동화작가 임정진씨도 함께했다.
평소 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지 않았던 학생들은 거제대교를 건너는 안에서, 굴 양식장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해가 떠오르는 바닷가에서 마냥 즐거워했다. 바닷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움츠러들기는커녕 해맑게 웃으며 바람을 맞았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직접 건져올린 생굴을 시식할 땐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이민웅(15·지적장애)군은 “맛이 끝내준다”며 환하게 웃었고, 유보람(19·지체장애)양은 “굴맛이 꿀맛”이라며 연달아 3개를 입에 넣었다.

왕복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행인 데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풍등을 띄우기 위해 이른 아침 잠을 설쳤으니 지칠 법도 한데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보람양은 “여행이 3박4일이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박경인양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 창밖은 어두웠지만 학생들의 얼굴에는 떠나기 전보다 행복한 빛이 역력했다.

거제=이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