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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목발 짚은 한의원 원장의 감동 사연

지난달 28일 오전 11시10분쯤 서울 종로구 푸르메재단 2층의 푸르메 한방 어린이 재활센터에서 허영진(41) 원장이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6)의 배와 등을 마사지했다. 허 원장이 “이제 주사 맞을까”라고 말하자 아이는 “싫어, 아파요”라고 했다. 허 원장이 “남자답게 씩씩하게 맞아야지!” 했더니 잠시 가만히 있던 아이가 “찌작(시작)!”이라고 했다.

허 원장은 지체장애 2급으로 장애인용 정형구두를 신고 양쪽에 목발을 하고 다닌다. 그런 허 원장이 장애 아이들을 돌본다. 2007년8월부터 이곳에서 일주일 네 번,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진료 봉사를 하고 그후 서초구에 있는 자신의 한의원으로 돌아가 오후 6시까지 진료한다. 그는 “주 4회 봉사를 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면서도 “기던 아이들이 걷고, 웅얼대던 아이들이 한 두 마디라도 똑바로 말하는 것을 보면 피로가 싹 풀린다”고 했다.

허 원장을 봉사의 길로 인도한 이도 한의사였다. 허 원장은 생후 9개월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5살 때까지 목도 가누지 못하고 의식도 자주 잃었다. 그런 그를 한 가정집 한의사가 고쳤다. 허 원장은 “이름은 모르고 할아버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분 치료 덕분에 7살때부터 목발을 짚으면 걸을 수 있게 됐고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꼭 한의사가 돼서 장애 아동을 치료하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허 원장은 상지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2000년 개원을 하면서부터 진료 봉사를 시작했다. 2000년 9월부터 1년 동안 지체장애인협회 정립회관 아이들을 매주 한 차례씩 봐 줬고, 2002년 경기도 군포시립 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를 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종로구 장애아동 보호센터 라파엘의 집에서 매월 한 차례씩 진료 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장애아를 둔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면 재단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2005년 무작정 푸르메재단을 찾아갔다. 그는 푸르메재단 백경학(47) 상임이사를 만나 “한방 어린이 재활센터를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2년 뒤 56㎡(17평) 남짓한 ‘푸르메 한방 어린이 재활센터’가 생겨났다. 백 상임이사는 “이제까지 재단에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허 원장처럼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이사회의 전원찬성으로 설립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허 원장을 통해 치료를 받은 아이는 80여명이다. 현재에는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 강원도 등 전국에서 온 20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주로 생후 36개월 이전 영유아가 많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무료로 진료를 해 준다. 허 원장은 “많은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지만 혼자서 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치료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길게 치료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찾아오는 부모들은 “허 원장을 만난 후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염색체 이상으로 2009년7월부터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규민(6)군의 어머니 조미안(40·경기도 남양주시)씨는 “아이가 치료받은 이후 살이 2㎏정도 찌고 밥도 잘 먹게 됐다”고 했다. 다운증후군으로 2009년 2월부터 치료를 받고 있는 안호영(6)군의 어머니 박수진(46·서울 강서구)씨는 “예전엔 자동차 그림을 보면서 혼자 ‘자동차’라는 말밖에 못하더니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이후에는 ‘자동차 아래에 있는 게 뭐야?’하고 물으면 ‘바퀴’라고 대답하기도 한다”고 했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김모(6)양의 어머니(40·서울 은평구)는 “원장 선생님도 같은 경험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말 한마디라도 장애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준다”고 했다.

허 원장의 바람은 종로구에 어린이 재활센터를 짓는 것이다. 그는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종로구에만 장애인 복지관과 재활원이 없다”며 “어린이 재활센터를 지어 더 많은 장애아동 가정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권은영 인턴기자·중앙대 정치외교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