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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엄마는 점점 겁이 납니다.

내 아들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과 그 엄마의 불안한 미래
일-여가-주거의 유기적 안전망 절실

주간보호센터를 찾은 어머니 김혜숙 씨와 아들 신봉준 씨. 사진=김혜숙 씨 제공
주간보호센터를 찾은 어머니 김혜숙 씨와 아들 신봉준 씨. 사진=김혜숙 씨 제공

김혜숙(62) 씨는 젊어서 사내방송 아나운서를 맡을 정도로 회사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둘째인 봉준이를 낳은 뒤에도 속독법 강사로 재취업할 만큼 일욕심이 컸다. 하지만 직업으로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김 씨의 다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무리 보아도 아이가 이상했다. 봉준이는 두 돌이 되도록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엄마는 그래도 기다리면 차츰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장애에 대한 정보와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봉준이는 5살 되던 해에 병원에 가서 첫 진단을 받았다. 보통 아이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데 3년이 걸린 셈이다.

“자폐 1급이었어요. 그때부터 일을 그만두고 오로지 봉준이한테만 매달렸어요. 7년 동안 차도 없이 지하철로 서교동 집에서 사당동까지 재활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유치원을 오갔어요. 집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봉준이 외에는 거의 놓아버리다시피 하고 살았어요.”

잘 다니던 직장, 꿈꾸던 미래, 즐겨하던 취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만 쳐다보며 지냈다. 엄마 자신의 삶과 바꾼 단 하나의 바람은 아이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 마침내 홀로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어머니 김혜숙 씨는 자신의 젊음과 아들 봉준이의 희망을 맞바꿨다.
어머니 김혜숙 씨는 자신의 젊음과 아들 봉준이의 희망을 맞바꿨다. 사진=지화정 간사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재활치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재활치료시설은 턱 없이 부족하고 보험이 적용되는 치료 또한 매우 한정적이다. 비장애 아이들을 기준으로 진행하는 공교육만으로는 간단한 셈은 고사하고 단어 하나 익히는 것조차 힘겹다.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면 부모 중 한 명은 일을 포기하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 역할은 거의 100%에 가까운 비율로 엄마가 맡는다. 월평균 100만원이 넘는 치료비가 들어도 절대 포기 못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다. 내 아이가 성인이 되어 홀로 남았을 때 한 사람 몫은 아니라도 1/2 몫 정도는 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이다.

그러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피땀 어린 노력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일자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나마 “먼지 없이 쾌적한” 좋은 일자리는 의사소통이 원활한 지체장애인이나 경증 발달장애인들 차지다. 80%에 가까운 발달장애인이 그저 집에 머무는 현실이고, 주간보호센터라도 갈 수 있으면 다행이다. 아이의 홀로서기를 목표로 쏟아 부은 시간과 돈, 어쩌면 그 동안 엄마가 희생한 인생까지 물거품이 된다는 뜻이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봉준 씨. 사진=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제공
주간보호센터에서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봉준 씨. 사진=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제공

올해 30살이 된 봉준 씨. 엄마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한글과 셈까지 익혀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혜숙 씨의 교실청소가 시작됐다. 장애아동을 입학시킨 엄마들 상당수가 그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요.”

아이의 장애가 엄마 탓이 아닌데, 혜숙 씨는 다른 엄마들 앞에서 죄인이 된 기분을 느낀다.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세월이 꽤 흘렀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엄마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요즘 엄마들의 뒷모습에서 지난 날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그럭저럭 다른 아이들과 수준을 맞추던 1학년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봉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반학교의 특수반을 다녔다. 엄마의 말을 군말 없이 잘 따르는 아들을 보면서 그런 대로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짝꿍이 꼬집었다”며 울면서 돌아온 날을 빼고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는 경우도 없었다.

“수영을 곧잘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선배들 졸업식에서 난타공연도 했어요. 볼링선수로 장애인체전에서 동메달도 땄고요. 직업적응 검사에서 A를 받아 직업훈련기관으로 진학이 확정적이었어요.”

김혜숙 씨는 "아들에게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데 엄마가 몸이 아파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한다. 사진=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제공
“아들에게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데 엄마가 몸이 아파 마음이 조급해져요.” 사진=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제공

하지만 엄마는 그 시절에 아이를 특수학교로 보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후회한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아들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신발을 자주 잃어버리고 오기에 선생님과 상의를 했더니 ‘아이들 장난’이라는 대꾸만 돌아왔다. 그럴 수 있다고 넘겼지만 이 무렵부터 봉준 씨는 온종일 소리를 지르며 엄마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표현력이 부족해 하소연을 할 수 없으니 그냥 입을 닫아버렸던 것 같아요.”

결국 누구도 감당할 수 없게 된 봉준 씨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의사는 이 증상에 대해 알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었어요. 불면증을 시작으로 성격이 무척 예민해지면서 불안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는 거예요.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어느 순간에 폭발하는 겁니다. 이후로 3년 동안 정말이지 지옥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는 심정이었어요.”

희망을 품고 성인기를 맞이하려던 엄마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봉준 씨의 증상은 차츰 완화됐지만 직업훈련이 가능했던 3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엄마와 함께 직업훈련센터를 찾을 때마다 봉준 씨는 몸서리를 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 일쑤였다.

이런 봉준 씨가 갈 곳은 주간보호센터뿐이었다. 그나마 받아주는 곳이 있는 봉준 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수요에 비해서 갈 곳이 너무 적어요. 주간보호센터가 필요한 장애인이 20만 명인데 전국 주간보호센터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1만 명 정도거든요. 게다가 한부모 가정이나 기초생활수급권자 가정이 우선입니다. 일반 가정의 장애인은 3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대기자를 앞에 두고 1년이 넘도록 기다려야 해요.”

김혜숙 씨는 이와 같은 복지 서비스의 불균형이 끝내는 장애인을 돌보는 가정의 붕괴로 이어진다고 힘주어 말한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는 책임을 나누어 짊어지는 사회, 자녀가 부모 없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안전망이 곧 희망이라면서.

늙어가는 엄마는 점점 겁이 난다. 최근 어지럼증과 이명이 겹치는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은 뒤로 조급함이 더 커졌다. 봉준 씨가 홀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죽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데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뿐이다.

“직업훈련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아주 일부예요. 의사소통이 힘들고 이따금 나오는 돌발행동으로 일하기가 어려운 아이들이 훨씬 많거든요. 이 아이들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주간보호센터와 그룹홈을 결합한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야외 프로그램에 참여한 봉준 씨. 사진=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제공
야외 프로그램에 참여한 봉준 씨. 사진=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제공

발달장애인은 다른 장애 유형에 비해 일을 그만두는 비율이 꽤 높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식의 돌발행동이 그 이유다. 하지만 그런 행동을 발달장애인 고유의 특성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우리 사회 일반의 인식이 진짜 문제다.

돌발행동은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발달장애인들이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스트레스를 스스로 조절하기 힘든 장애인에게 일반인과 같은 업무환경이나 생활조건을 요구하면 안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라면 생산의 보람과 심리적 안정을 두루 맛보는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져야 한다.

김혜숙 씨는 푸르메에코팜이 능력만큼 일하고 힘들면 쉴 수 있는 조건, 자연 속에서 치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환경, 스포츠와 예술 활동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갖추어진 곳이면 좋겠다고 한다.

“푸르메재단이 생산활동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병행할 수 있는 행복한 일터를 만들고, 자치단체가 주간보호센터나 평생교육센터, 그룹홈까지 지원해서 결합시킨다면 이상적인 그림이 될 것 같아요. 그런 공간이 현실로 이뤄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글= 지화정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꿈자람터장애인주간보호센터, 김혜숙 제공

“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습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내 아이가 좋은 일자리를 얻어 자립하지 못하면 어머니의 눈물은 마를 수가 없습니다. 푸르메재단은 CBS와 함께 발달장애 청년을 위한 스마트팜 건립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벽돌 한 장을 쌓는 마음으로 기부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나눔이 기적을 싹틔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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