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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책 22권 ‘인세 기부’ 동화작가 고정욱씨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3)책 22권 ‘인세 기부’ 동화작가 고정욱씨

2011.01.10 17:51

인세 일부 사회환원… “내가 행복해지려고 기부”

 고정욱(51) 동화작가는 사람을 울리는 재주를 타고났다. 지난 9일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에서 만난 그는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제가 얼마 전에도 고등학교 동기 녀석들을 울렸지요”라고 껄껄거리며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 경성고 10기인 그는 지난해 11월 졸업 3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동기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리고 장소를 섭외하는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행사에 모인 동기들이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힘든 일을 혼자 했느냐’며 미안함 섞인 마음을 전했는데, 이를 받은 고 작가의 말이 친구들을 울렸다.

책가방 들어 준 소중한 친구들

“친구들한테 제가 그랬어요. ‘오늘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던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너희들이 나를 등하교 때 업어주거나 가방을 들어주고 말동무 해주는 등 날 친구로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난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너희들 도움을 받았다. 그 덕에 작가로서 혹은 국문학자로서 가장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게 됐다. 난 너희들에게 진 은혜를 죽을 때까지 갚을 길이 없다. 그래서 이 일이라도 해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고요. 그랬더니 벌써 몇 놈이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이더라고요.”

그는 장애인이다. 1960년 서울 용산에서 유복한 집안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됐다. 고 작가의 부모는 현명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은 몸이 불편할 뿐 얼마든지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5살 무렵 글을 깨우치고 동화를 읽으면서부터 그는 밝아졌다. 동화책을 펼치면 톰 소여가 돼서 미시시피강을 누비고 걸리버가 돼서 거인국으로 훌쩍 날아갈 수 있었다. 책은 그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한 창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작가의 꿈을 갖게 됐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자신의 수족이 돼준 친구들에게 언젠가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그는 공부를 곧잘 했고 초중고 모두 개근상을 받았다.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해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따기 직전인 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돼 등단했다.

학창시절 딱 한 번 학교에 못갈 뻔했다. 고1 내내 자신의 가방을 들어주던 친구가 반이 바뀐 고2 첫 날 집으로 오지 않았다. 그 친구가 그동안 의무감으로 가방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 기억을 살려 2003년 ‘가방 들어주는 아이’(사계절)를 썼다. 1년 내내 장애인 급우의 가방을 들어주었던 주인공이 새 학년이 된 첫 날 가방을 들어주지 않고 갈등을 겪는 일을 생생하게 담은 성장동화였다. 이 책은 2004년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됐고, 그는 인세로 들어온 돈 1억원을 기적의 도서관 건립에 기부했다.

“그건 희열이었어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즐거운 일이었죠. 돈 많은 사람만 기부하는 줄 알았는데, 남에게 도움만 받던 나 같은 사람도 기부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 책을 쓰고 인세를 기부하기로 마음먹었죠.”

그는 지금까지 170여종의 책을 냈다. 300만부 이상 누적판매를 기록하는 등 인세 수익으로만 먹고 사는 국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책은 10개국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글만 쓰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135번이나 강연을 나갔다. 이렇게 돈을 모아 기부한다. 장애인 단체 등 10여 군데에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그는 특히 22권의 인세를 기부했다.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인세를 기부한 작가는 없다. 지난해 출간한 동화 ‘희망을 주는 암탐지견 삐삐’(주니어김영사)의 경우 인세 전액을 장애인재활센터 건립을 위해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책의 그림을 그린 최정인 화백과 출판사도 기부에 동참했는데 작가와 화백, 그리고 출판사가 함께 기부를 한 경우는 한국 출판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왜 이리 기부를 많이 하느냐고 묻자 그는 ‘행복해지려고’라고 대답했다.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행복에는 3단계가 있어요. 1단계는 ‘록스타의 행복’입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질 정도로 출세하는 걸 가리키죠. 두 번째는 ‘열정의 행복’입니다. 돈이나 명예가 아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행복을 느끼는 단계에요. 마지막은 ‘세상을 바꾸는 행복’입니다. 사명감을 느끼고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죠. 제가 이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통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진다니,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고 작가도 사실 얼마 전까지는 괴로움을 안고 살았다. 왜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존재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삶이 허망했다.

“대여섯 살 때부터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장애인으로 만드셨느냐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물었지만 하나님은 대답해주지 않았어요. 인세를 기부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해답을 찾지 못했었죠. 그런데 어느 날 명상 도중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정욱아, 내가 널 장애인으로 만든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 너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장애인의 고통을 널리 알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요. 마치 데일 것처럼 뜨거운 눈물이 볼에 흘렀어요. 아,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바치라는 말씀이시구나. 난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구나. 그러니 제가 잠을 푹 잘 시간이 있겠습니까? 나가서 뭐든 도와야지요. 동화를 써서 인세를 기부하든, 강연회를 다니든, 장애를 가진 절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하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휠체어를 밀고 나가던 그가 고개를 돌려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어질 때가 살아가는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장애인인 나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웃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어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