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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가지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 강지원 – 고시공부

2012-04-04 

수십년 살아오는 가운데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젊은 시절 고시공부를 한 일이다. 남들은 그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만일 내가 고시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일찍부터 내가 진정으로 잘할 수 있는 적성을 찾았을지 모른다.

1969년 봄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집권을 위해 3선개헌을 추진했다. 대학가는 데모에 나섰다. 대학 2학년이던 나도 인근 여관방을 돌며 격문을 써서 방을 붙일 준비를 했다. D데이가 왔다. 그런데 당시 사회를 보던 동료가 갑자기 나에게 연설을 하라고 지명했다. 나가서 한마디했다. 장기집권의 음모를 분쇄하자고.

그런데 그 장면이 현장에 쫙 깔린 정보원들에게 그대로 찍혔다. 핵심 주동자로 지목돼 무기정학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체포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래서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을 탈출했다. 그렇게 찾아 들어간 곳이 백양사 천진암이다. 그곳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고참들을 만났다. 남자는 사(士) 자를 붙여야 출세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은 터였다. 나의 고시공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행정고시 첫 시험에서 2차까지 합격했다. 그런데 3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데모 주동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화가 나 6개월 후에 또다시 도전했다. 이번에는 성적이 아주 좋아 떨어뜨리질 못했다. 현직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사법시험에도 두세 차례 도전한 끝에 합격했다. 검사를 지망했는데, 또 봉변을 당했다. 중앙정보부에서 데모 주동자라는 통보가 왔다며 서울이 아닌 전주로 발령을 낸 것이다. 발령을 거부할까 망설이다가 시대적 아픔이려니 하고 부임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운명적으로 청소년 문제를 만나게 됐다. 검사의 첫 업무로 소년사범 담당이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청소년 연구는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술집 출입도 끊었다. 승진욕도, 감투욕도, 출세욕도, 금품욕도 내려놓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청소년 연구는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 이런 사회운동은 나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변호사로 전직한 직후 TV나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방송 활동도 검사나 변호사 활동보다 내 적성에 더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타고난 적성을 찾으라고 호소해 왔다. 출세, 영달, 입신양명 같은 사회적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오로지 자신의 적성 안에서 꿈을 찾으라고 강조해 왔다. 그것이 자기실현이고 자기행복이라고, 절대로 뜬구름 같은 돈이나 권력, 지위, 명성, 인기 같은 것들은 좇지 말라고,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의 타고난 적성 안에 있다고.

그것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었다. 내가 고시공부를 하고 40여년간 검사와 변호사 생활 등을 해온 것이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었는가. 지금 나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생각은 계속 청소년, 여성, 장애인들을 향한 것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된 것이다. 내가 고시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일찍 내 적성을 찾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빙 둘러서 현재에 이르지 않고 곧바로 나만의 길을 찾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이런 이야기에 “이미 다 해 보았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냐” “검사·변호사 경험이 그런 사회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았겠느냐”는 등 달리 해석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적성을 찾은 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나의 후회가 이 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작으나마 꿈을 찾는 데 시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사법시험 1000명, 로스쿨 1500명 시대에 그들에게 묻는다. 여러분은 진정 자신의 적성을 사랑해서 선택했는가, 그것이 아니라 그 길이 보여줄 것 같은 돈, 지위, 권력을 사랑한 나머지 선택했는가라고.

강지원 푸르메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