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섹션

[조선일보]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숨 막혀 못 살아… 내가 행복해서 나누며 사는 것”

[최보식이 만난 사람]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숨 막혀 못 살아… 내가 행복해서 나누며 사는 것”

2014-03-03

[손꼽히는 ‘연예계 대표 선행 스타’… 가수 션]

“연애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의 아내가 더 사랑스러워… 완벽하지 않은 나의 반쪽을 아내가 채워주기 때문에”
“나쁜 면을 지적하고 뒤집어엎는 것이 아니라 좋은 면을 많이 드러내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션(42)이라는 가수가 또 홀트아동복지회에 1억원, 푸르메재단에도 1억원을 기부했다.

그는 ‘연예계 대표 선행 스타’로 불리고, 그 부부는 대학생 설문조사에서 ‘닮고 싶은 부부’ 1위로 꼽힌 적이 있다. 사실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선행에 대해서는 한번쯤 들은 적은 있을 것이다. 푸르메재단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에 기부한 2억원은 순전히 본인 돈인가?

“그렇다.”

―연예 활동이 왕성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돈이 어디서 나오나?

“당초 푸르메재단에는 1000만원을 기부할 생각이었다. 작년 초에 1만㎞ 달리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1㎞마다 1000원씩 내겠다고 했다.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액수였다.”

-그냥 기부하면 될 일이지 왜 뛰면서까지 해야 하나?

“나 스스로 정성을 다하려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일 평균 27.3㎞쯤 달려야 한다. 마라톤만으로는 어림없고, 사이클·수영을 병행했다.”

그가 홍보대사로 있는 푸르메재단 사무실 입구에는 마라톤 셔츠가 걸려 있다. 그 셔츠에는 사람들 이름이 빡빡하게 적혀 있다. 후원자 365명의 이름이라고 했다.

가수 션은“내 삶에서 결혼은 행복의 정점이었다. 이 행복을 조금 나누겠다는 마음에서

매일 1만원씩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가수 션은“내 삶에서 결혼은 행복의 정점이었다. 이 행복을 조금 나누겠다는 마음에서 매일 1만원씩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수 션은“내 삶에서 결혼은 행복의 정점이었다. 이 행복을 조금 나누겠다는 마음에서 매일 1만원씩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마라톤 대회에서 뛸 때 1인당 1만원씩 365명의 후원을 받는다. ‘장애아 재활 병원’건립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1만원이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어떤 분들은 ‘버스를 안 타고 아낀 것’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전부’라면서 후원해준 것이다. 이런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대회 전날 아내가 그 이름을 일일이 내가 입을 티셔츠에 다 적는다. 장애아 재활 병원의 벽에도 이 마라톤 셔츠들을 걸어놓을 예정이다. 장애아 부모들은 빽빽하게 적힌 후원자 이름을 보면

‘우리 아이를 위해 많은 사람이 같이 있구나’ 하며 위안받을 것이다.”

―작년 한 해 철인 3종 대회 3번, 마라톤 대회 17번 출전했다고 들었는데?

“풀코스는 안 뛰었고 10㎞구간이었다. 자꾸 뛰니 기록도 향상되더라. 실제 41분에 주파한다.”

―그렇게 해서 작년 목표 1만㎞를 달성했나?

“발톱이 빠지곤 했지만 목표를 채웠다. 그런데 연말에 예상에 없던 CF건이 들어왔다. 그래서 1㎞당 1000원에서 1만원으로 올렸다. 내가 그전부터 ‘만원의 기적’ 캠페인도 해왔으니….”

―’만원의 기적’이라?

“매일 만원씩 모으면 일 년이면 365만원이 된다. 결혼한 다음 날 아내(탤런트 정혜영)에게 ‘우리가 행복하게 결혼했는데 이웃과 적게라도 나누며 살아가자’며 이렇게 시작했던 것이다. 둘 다 돈을 버니 우리에게는 매일 1만원 기부가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에 365만원을 낼 수도 있는데, 왜 날마다 1만원씩인가?

“매일 밥 먹듯이, 이게 이벤트가 아니라 내 삶의 한 부분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 이후로 10년째 해오고 있다. 결혼기념일마다 1만원권 365장이 든 봉투를 ‘밥퍼’ 최일도 목사님에게 전하고 그날 하루 배식 봉사를 한다.”

―내가 세상 때가 묻어서인지 직업이 그래서인지 모르나, 당신 말을 듣다 보면 ‘사람이 저렇게 선할 수만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인간의 내면에는 악(惡)과 욕망도 있을 텐데.

“당연한 의문이다. 나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선함을 입었을 뿐이다(이 표현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 관계된 것이다).”

―매스컴에 자신을 저렇게 드러내는 것은 뭔가 보여주기 위한 선행이 아닐까?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내가 매스컴에 나오는 것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어 여러 사람의 동참이 필요할 때다. 장애아 재활 병원을 짓는 데 425억원이 든다. 내게는 그런 돈이 없다. 하지만 내가 하루에 1만원씩 365만원을 내고, 다른 1만명이 함께하면 병원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2007년 푸르메재단의 홍보대사를 맡은 뒤로 축구 선수 이영표씨와 연예인 이성미·박미선씨 등 250명을 ‘365만원’의 회원으로 가입시켰다고 한다.

―기부자를 끌어들이는 노하우가 있나?

“선행(善行)은 ‘내가 먼저 행해야 하는 것(先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실제 그런 삶을 살고 있으면 누구를 설득하는 게 쉽다. 말로만 ‘기부해달라’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과거에는 연예인 친구들이 ‘술 한잔 하자’며 불러냈지만, 요즘에는 ‘좋은 일 할 때 꼭 불러줘’라고 한다.”

―이런 삶을 택한 계기가 있었나?

“결혼이 계기가 됐다. 내 삶에서 결혼은 행복의 정점이었다. 이 행복을 조금 나누겠다는 마음에서 매일 1만원씩 기부하기로 했던 것이다. 좋은 집에 살고 멋진 차를 타면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와 나눌 때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가정의 행복을 만들기 위해 점점 더 이런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당신 부부는 ‘가장 닮고 싶은 부부’ 1위로 꼽힌 적이 있다. 바깥에 보여주는 모습과 가정 속의 모습이 다를 수 있지 않은가?

가수 션과 아내 정혜영(왼쪽)씨.

/조선일보 DB

“잉꼬 같았던 연예인 부부가 어느 날 이혼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에 대해서도 ‘얼마나 오래가나 두고 보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요즘도 아내에게 연애편지를 쓴다. 정말 아내를 사랑하고 같이 살아가는 게 너무 좋다. 누구 시선을 의식해 이러는 게 아니다.”

―한때 아무리 사랑했어도 익숙해지면 다른 면이 보일 텐데….

“아내에게 부족한 면도 있지만 좋은 면이 훨씬 더 많다. 어느 쪽을 보느냐에 달렸다. 대부분 자신의 배우자가 아닌 여자에게는 관대하다. 왜 자신의 배우자에게만 그런 관대한 마음으로 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연애할 때보다 오히려 지금의 아내가 더 사랑스럽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반쪽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당신의 반쪽에 무엇을 채워줬길래?

“나는 힙합 가수로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노래했다. 세상의 나쁜 구석이 더 많이 보였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행복해서인지 좋은 면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이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닐 것이다. 나쁜 면을 지적하고 뒤집어엎는 것이 아니라, 좋은 면을 더 많이 드러내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쪽으로, 내 관점이 바뀐 것이다. 범죄 뉴스만 보면 못 살 것 같지만, 그래도 세상 속에는 따뜻한 사람이 많지 않은가.”

―출산을 기피하는 요즘 세태에, 자녀를 2남 2녀나 뒀다고 들었다.

“자녀 양육이 힘들지 않은 게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행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내 형은 자녀를 무려 11명 두고 있다.”

―가정부가 아이들을 돌보나?

“나와 아내 둘이서 한다. 저녁에 들어가면 애들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지금’YG엔터테인먼트 이사’로 되어 있던데, 주 수입원이 그쪽인가?

“명함이 그럴 뿐 그쪽에서 봉급을 받지 않는다. 다만 가수로 계약은 되어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가수 활동은 별로 없고 강연 활동이 많다. 주 수입원은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다. 강연료와 CF 수입은 대부분 기부한다. 내게 돈은 도구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가지려고만 한다. 돈이 있어도 안 쓰거나 다른 곳에 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가 좋은 것이다.”

―지금 전세로 살고 있다고 들었다.

“결혼 4년이 됐을 때 해외 아동 6명을 후원했다. 당시 아내가 아프리카에 가서 그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와서는 ‘집 사는 걸 뒤로 미루고 더 후원하자’고 했다. 그래서 100명을 더 후원하게 됐다. 눈에 보이고 알게 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을 조금 포기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빠듯한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가진 여유분을 나눌 뿐이지, 가족을 쪼들리게 하면서까지 돕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되면 집도 살 수 있다.”

―학력은 미국서 고교를 졸업한 것만 나와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령(領) 괌으로 이민을 가 거기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수학을 잘해서 괌 대표로 미국 본토 수학 대회에도 참가했다.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꿈이어서, MIT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나?

“(…) 삶은 계획대로 안 된다. 고교 시절 아무 일도 아닌데 욱하는 성격에 가출했다. 그 뒤 식당에서 그릇을 치우고, 마트에서 상자를 나르거나, 관광객 상대로 텐트를 쳐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 생활했다.”

―1990년대 중반 귀국해 ‘현진영과 와와’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댄서로 활동했는데.

“집을 나와 있던 열여덟 살 때 춤을 처음 알게 됐다. 나는 뭔가에 빠지면 깊게 빠진다. 업무가 끝나면 늘 친구들과 춤추러 다녔다. 국내에 놀러 와서도 이태원 외국인 클럽에서 춤췄다. 내 춤추는 모습을 보고 현진영씨나 양현석씨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괌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나왔다.”

백댄서로 무대 뒤에 있던 그는 1997년 힙합 그룹 ‘지누션’의 래퍼로 본격 데뷔했다. 음반 4장을 냈다고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지누션’에 대해 잘 모른다. 가수 활동은 안 하고, 오히려 강연 스케줄이 빡빡하다고 들었다. 본업이 뭔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특히 청소년들은 ‘지누션’에 대해 더 모른다. 그런 내가 TV에 가끔 나오니까 ‘사회복지사’인 줄로 여긴다.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가수이지만, 살면서 우선순위가 생기는 것 같다.”

―어쩌면 기부로 인해 가수 때보다 더 ‘유명세’를 탔다.

“의도하지 않고 살았는데 공감해주는 분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알려졌기 때문에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어도 그게 어렵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숨 막혀서 못 살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