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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한국 시사토크] “장애인 250만명… 지방선거 후보들 구체적 공약 내놔야”

[한국 시사토크] “장애인 250만명… 지방선거 후보들 구체적 공약 내놔야”

2014-03-12

■ 김미연 장애인법연구회 사무국장 & ‘지선아 사랑해’의 이지선 작가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이지선(오른쪽) 작가와 김미연 장애인법연구회 사

                                 무국장이 10일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푸르메재단 4층로비에서‘장애인의 삶

                                 과 정책 개선 방안’을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뒷벽에 장애인재활병원

                                 건립을 후원했던 고 박완서 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김미연(왼쪽) 장애인법연구회 사무국장과 이지선 작가가 10일 푸르메재단

                                 어린이 재활병원건립기금모금을 홍보하기 위한 조형물 바로 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미연 국장
정책 결정 때 당사자 의견 반영해
장애인 필요에 따라 예산을 짜야

● 이지선 작가
장애인 연금 일률적 기준은 잘못
실제 필요한 사람을 찾아 더 지급을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고 며칠 뒤 처음 시원한 물을 마셨을 때 ‘살아 있는 맛’을 느끼고, 죽음 같은 순간이 올 때마다 그 물맛을 기억했다.” 사고 이후 삶의 변화를 담은 책 <지선아 사랑해> 를 쓴 이지선(36) 작가는 작지만 어마어마한 물맛을 계기로 고통을 이기고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나눠 주는 삶을 펼치게 됐다고 고백했다.

소아마비로 중증 지체장애인이 된 김미연(48) 장애인법연구회 사무국장은 “취업 시험에서 잇따라 떨어지면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회를 직접 바꿔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6ㆍ4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회적 약자 중 한 축을 이루는 장애인의 삶의 질 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 ‘장애인의 삶과 정책 개선 방안’을 주제로 열린 대담은 10일 서울 종로구 푸르메재단 회의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정 때 ‘장애여성’ 조항 삽입을 주도했던 김 국장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얘기처럼 미리 설정한 예산 규모에 맞춰 장애인 정책을 가위질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작가는 “달라진 내 얼굴을 본 사람이 걸어가다가 다시 되돌아서 쳐다보는 게 힘들었다”면서 “장애인을 다른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이 구체적인 장애인 공약을 내놓아 정책 경쟁을 하고, 모든 장애인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담 진행=김광덕 선임기자

-두 분은 장애인의 어려움을 딛고 적극적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떻게 장애인이 됐는가.

이지선 작가=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년 때인 2000년 7월 오빠의 차로 귀가하며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 사고로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었다. 여러 번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횟수를 세다가 그만뒀다(그가 쓴 책에는 ‘7개월 간의 입원, 30번이 넘는 고통스런 수술과 재활 치료를 이겨냈고 코와 이마와 볼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기적을 경험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미연 장애인법연구회 사무국장= 생후 11개월 첫 걸음마를 할 때쯤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를 갖게 됐으나 성격이 적극적이어서 초등학교 때는 반장을 맡기도 했다. 첫 걸음마는 했었다고 한다. 처음엔 그냥 걸어 다녔으나 나중에 지팡이를 잡고 걷다가, 30대 중반부터는 전동 휠체어를 타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더 심해져 중증 지체장애인이 됐다.

-두 분 모두 장애인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김 국장= 매일 사춘기 자녀들과 전쟁을 치르는 엄마이다. 고교 2년생 딸과 중학교 3년생 아들이 있다. 또 성균관대 법학과 석사과정에 다니는 학생이다. 장애인법연구회 일도 맡고 있다. 변호사, 판사, 법학자, 로스쿨 학생 등 50여명의 회원이 장애인 차별 금지 및 인권 보호를 위해 법 연구와 공익 소송 등의 일을 하고 있다.

이 작가= 나는 아이가 없고,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혼자 살고 있다. (웃음) UCLA 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4년째이다. 또 푸르메재단. 한림화상재단 등 다섯 군데에서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자치단체, 학교, 기업체 등이 주최하는 특강에도 종종 참여한다. 특강 주제는 ‘삶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너무 사소해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일들이 큰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있다.

-숱한 어려움을 이기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이 작가= 교통 사고를 당한 뒤 1주일쯤 뒤 산소호흡기를 떼고 나에게 물을 줬다. 빨대를 통해 입과 목으로 물이 흘러들어 왔는데, 나는 지금도 그 물의 시원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물맛은 엄청난 기쁨을 줬고 살아 있는 맛을 느끼게 했다. 사는 게 맛있다고 느꼈고, 살아가는 맛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살아 있기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기쁨, 전에는 몰랐던 소소한 행복을 세어 보면서 살아가는 맛을 기억했다.

김 국장= 대학 졸업 때쯤 서류 전형에 합격하고 한 달 사이에 네 번 면접을 봤는데 모두 떨어졌다. 나에게는 질문도 제대로 안 했다. 사회가 나를 장애인으로 보는구나 깨닫고 아주 절망했다. 1992년 다리를 바로잡기 위해 수술한 뒤 동생 권유로 인터넷 통신을 하게 됐다. 가입한 장애인동호회에서 상당수 장애인들이 20년 가까이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갇혀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세상이 거부하면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1993년부터 장애인 인권운동을 해 왔다. 분노의 힘 치고는 결과가 예쁘지 않은가(웃음).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김 국장= 연령대별로 요구하는 역할이 있는데, 그때마다 큰 장벽을 경험했다. 가령 초등학교 때 장애인이 이용할 만한 화장실이 없어서 3교시 끝날 때쯤 어머니가 학교로 와서 도와 주셨다. 고교 때는 아예 화장실에 가지 않기 위해 아침 7시에 등교한 뒤 밤 10시 귀가할 때까지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지냈다. 대학 졸업 때는 취업이 어려웠다. 결혼할 때에는 ‘왜 장애인과 결혼하느냐’등의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생애주기에 맞는 복지정책이 없어서 그 부담을 모두 장애인과 가족들이 짊어져야 한다.

이 작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시선이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내 모습이 달라졌는데 거리에서 나를 본 사람들이 이유 없이 동정하고 한 번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되돌아서 다시 쳐다보는 시선이 너무 힘들었다. 치료를 받으려 일본에 갔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서 놀랐다. 미국에서도 나를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길에 나설 때 사람들이 쳐다보더라도 상처 받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장애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 작가= 결국 국민의 인식이 중요하다. 장애인을 단순히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국민의 일원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장애인들에게 뭘 보여 주려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도 안 된다. 비장애인은 자기도 모자란 것이 있음을 깨닫고, 장애인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비장애인은 장애인들이 그 일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서 함께 살아가면 진정한 사회통합이 될 수 있다.

김 국장= 등록 장애인이 250만명이 넘는데, 장애인 가구의 40%가 빈곤층이다. 이들이 적절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망이 확보돼야 한다. 장애인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정책결정 구조에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일본 호주 등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으로 장애인들을 장애인 인권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 앉힌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필요에 따라 예산을 짜는 게 아니라 국가 예산에 맞춰 장애인 정책을 짜고 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가 나그네를 집안으로 불러들여 침대에 눕히고 나그네 키가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자르고 침대보다 작으면 다리를 늘렸던 것과 같다.

-장애인 고용을 늘리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 국장= 장애인 의무고용률(정부ㆍ공공기관 3%, 민간기업 2.7%)을 대부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이는 최소한의 약속이므로 꼭 지켜야 한다. 장애인 실망실업자(구직 단념자)를 없애려면 그들을 고용보험 등의 사회적 안전망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장애청년들을 상대로 구체적인 직업훈련 교육을 시켜 실제 노동시장이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이 작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공단에 큰 예산이 들어가는데, 장애인들의 고용을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고용주도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을 고용 대상으로 봐야 한다. 일자리를 구하러 온 장애인을 일단 배제시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즘 국회에서 논의되는 장애인연금법 개정안의 골자는 중증 장애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연급을 지급하는 것인데,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김 국장= 장애인연금은 장애인수당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을 보완하는 제도여야 한다. 그런데 장애인연금은 1급 중증 장애인, 그 중에서도 소득 하위 70%에게만 준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장애인연금을 모든 장애인에게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것과도 다르다. 장애인연금법이 한 번 통과되면 잘못된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장애인들이 동의하는 법 개정이 돼야 한다.

이 작가= 장애인 연금을 모두에게 주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예산이 제한돼 있으므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을 구체적으로 조사해서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장애 등급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해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어떻게 돼야 하는가.

이 작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분들은 장애인들을 국민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장애인을 위한 구체적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또 정부와 선관위는 장애인들이 투표하기 편안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 국장= 지방선거 후보들은 주민 가운데 최소 10~15%는 장애인과 관련된 표라고 인식하고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장애인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는 지역 일꾼들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장애인의 참정권이 보장돼야 한다. 최근 선거관리위원회가 3만개의 장애인용 기표소를 제작했는데 중증 장애인이 이용하기 어렵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장애인단체는 긴급구제 조치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또 기초 공천 폐지 여부와 관계 없이 장애인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김광덕 선임기자 kd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