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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힘든 사람 손 잡아주는 것, 돈보다 더 중한 인생 가치

힘든 사람 손 잡아주는 것, 돈보다 더 중한 인생 가치

공ㆍ프 여섯번째 주인공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2015-06-01

전문가의 재능 기부를 통해 제작된 전남일보 공프로젝트 6월 작품. 전남일보 홈페이지 지면보기 6월 1일자 20면을 클릭하면 실제 신문에 게재된 콘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 변순철 작가.

장애어린이청소년 60만 추산
우리 사회 재활치료 손 놔
그들 위해 병원 짓는게 내 일

내년 개원 어린이재활병원
1만명 시민, 500개 기업 기부
이를 모델로 많은 병원 생기길

가장 성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남 위해 뭘 할 때 행복한 사람
재단 기부 대부분 평범한 시민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
고위공직 나눔평가제 의무화
큰 기부 끌어내는 제도 마련을

‘위장 전입,부동산 투기,논문 표절, 병역 특혜’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 청문회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후보자의 도덕성을 검증하는 항목이다.

그런데 이번달 있을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특이한 검증 항목이 추가될 듯 하다.’기부’가 그것.

이유는 이렇다. 황 후보자는 부산고검장을 마치고 17개월 동안 한 법무법인에서 15억9000만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법무 장관 청문회에서 전관예우 논란을 빚으며 큰 쟁점이 됐다. 당시 황 후보자는 수임료 일부를 사회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장관이 되는 조건이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도덕적인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고위 공직자라면 평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에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명예(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회지도층의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이는 로마 등 유럽에서 왕과 귀족은 전쟁 발발시 선봉에 서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생명을 바쳐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고 그에 대한 대가로 농노들에게 세금과 복종을 요구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솔선수범해야 하는 도덕적 리더십의 표본이 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국가 사회지도층에 있는 인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갖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의무 보다는 특권챙기기에 급급한 지도층 인사들로 인해 국가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총리나 장관 인사청문회를 보면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언론에서는 매일 정치인을 비롯해 고위 공무원, 재벌 등 지도층 그룹의 부정 부패와 도덕적 해이 현상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이는 지난 반세기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 매진한 결과, 상당수준의 경제성장과 번영 등 물질적 토대를 구축했지만 그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은 이루지 못한 결과다. 압축성장의 부작용과 문제점이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저성장과 실업, 사회 양극화, 고령화와 저출산 등 사회 전반에 위기 의식이 퍼져 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은 공동체를 지켜내는 최고의 필요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희망 찾기를 인물을 통해 조망해오고 있는 전남일보 공프로젝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6월 주제로 정했다. 각계 전문가가 재능 기부형태로 프로젝트팀에 참여하는데 팀에서 선정한 인물은 백경학(52)푸르메재단 상임이사다. 그는 아내의 교통 사고를 계기로 국내 최초의 환자 중심의 장애인 어린이 재활병원 설립을 위해 맥주제조회사를 만들고 그 수익금 일부를 기금으로 해 비영리법인 푸르메 재단을 설립해 10년여간 매진해온 인물이다. 백 상임이사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시민과 기업, 지자체의 기부를 이끌어냄으로써 공공의 가치 실현에 앞장서왔다. 포기하지 않고 제때 제대로 된 재활 치료를 받는다면 장애와 가난이라는 이중고통을 받는 장애어린이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줄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소재 재단 회의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재단 설립 배경과 추진 사업, 나눔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소재 푸르메재단 사무실에서 백 상임이사를 만나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기부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현재 하는 일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장애인을 위해 아름다운 병원을 짓는 사람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매년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통 사고와 질병 등으로 후천적인 장애인이 되고 있고 우리나라 장애어린이청소년은 6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제대로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은 한 군데도 없다. 기존에 있던 두 곳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한데다 정부에서도 제때 제대로된 치료만 하면 우리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는 어린이재활치료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5년 건립된 푸르메재단에서는 장애어린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재활병원건립운동을 벌이고 있고 그런 노력의 결과 마침내 내년 3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드디어 하루 500명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푸르메재단ㆍ넥슨 어린이 재활병원)이 세워지게 된다.

-현직 이전에 CBS 기자, 동아일보 기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 하우스 맥주를 제조해 판매하는 옥포버훼스트 대표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쳐왔다.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개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두 가지 신념을 간직하게 됐다. 하나는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끝내 이룰 수 있다(愚公移山ㆍ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부자를 만나 설득하고 병원에서 느낀 것은 ‘백 번을 참으면 백 번 모두 이길 수 있다(百忍百勝)’이다.

-아내의 아픔을 보고 부조리함과 분노도 많이 느꼈을텐데 어떻게 장애 어린이재활을 돕는 전문병원 설립을 목표로 푸르메재단을 설립하게 됐나.

△제가 직접 겪어 보니 갑자기 후천적인 이유로 장애인이 될 경우 모든 고통을 가족이 짊어져야 한다. 한순간의 불행이 철저하게 개인의 몫이다. 그런데 국가나 지자체에서 아직 장애로 인한 개인적인 불행과 재활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 개인적인 불행을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해서 유럽 선진국처럼 장애인들이 재활치료를 받아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는 그런 병원 하나쯤은 있어야 된다고 보고 시작했다.

-국내 최초의 장애 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10개월여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사료되는데,어떻게 난관을 극복했나.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은 국가에서 해결할 사안인데 왜 민간에서 나서서 병원을 짓느냐 하는 것이었다. 우리 정부도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재원 확보 문제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에는 이번에 전체 430억원의 건립기금 중 50억원을 지원해줬고, 마포구에서는 병원부지를 구입해 빌려주는 등 조금씩 긍정적인 쪽으로 입장이 바뀌고 있다. 내년 마포에 문을 여는 어린이재활병원은 1만명의 시민과 약 500개의 기업이 기금을 모아서 가능하게 됐다.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넥슨에서는 삼성도 하기 힘든 200억원의 큰 기금을 기부해줬고 돌잔치를 대신한 기금에서부터 초등학생의 용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뜻이 모아져 가능한 일이었다.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함께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음이 합해져서 가능했다고 본다. 이번에 시민의 성금으로 서울에 세워지는 재활병원이 성공 모델이 되어 광주 등 전국에 많은 병원이 만들어지는 게 저의 바람이다.

-장애인 어린이 복지에 이정표를 세우는 재활병원 건립은 개인사를 계기로 출발했지만 공공의 문제로 인식을 확대해 실천했다는 점이 핵심가치로 보인다. 부인이 8년간 소송끝에 받은 피해보상금 10억원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해 재활병원 건립의 종잣돈이 됐다. 쉽게 말해 목마른 사람이 솔선수범해 우물을 팠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 물을 먹을수 있게 된 셈이다. 여기에는 남다른 사명감이 작용했다고 보는데.

△1998년 아내가 영국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1년반 동안 독일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으니 가장 선진적인 의료제도를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 그런데 귀국해보니 그때는 정말 우리나라 병원시설뿐 아니라 의료제도가 너무 열악한 수준이었다.

아내에게 “우리가 그런 좋은 경험을 했으니 작은 병원을 하나 만들어보자”고 말한 것이 덜컥 씨가 되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면 하지 않았을 걸’하는 후회를 많이 했다. 그러나 푸르메재단을 세우고 장애어린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되돌아봐도 잘한 것 같다. 1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걸으며 이제 앞길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나눔은 실천이 중요한데 나눔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삶속에 어떻게 행할 수 있는가.

△연세대나 이화여대, 삼성전자 등 대학과 기업에 강연을 시작하면서 묻는 말이 있다. ‘가장 성공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돈을 성공의 요소로 꼽는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내 주위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성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봉사를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고 자원봉사하고 내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눔은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기부도 하고 자원봉사하겠다는 사람은 그런 기회가 와도 하지 못한다.지금 당장 매달 1000원부터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곳에 기부하고 찾아가서 손을 잡아주는 일부터 하면 된다.

-현재 백 상임이사가 하는 일도 한 지식인으로서 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생각된다. 우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실 진단과 활성화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 재단에 기부하는 분 중 90%는 겨우 먹고 살거나 부족하지만 긍정적으로 내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큰 부자와 큰 기업이 기부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이런 면은 우리사회가 가진 큰 장점일 수도 있고 아직 우리사회의 부자들이 내 것을 나누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처럼 한국의 큰 부자가 재산을 쾌척하지 않는 것도 부자들을 인정하고 이들의 결단에 박수치는 그런 사회풍토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들이 결단을 흡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에서는 기부를 하면 기부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액공제해준다. 당연히 부자들은 세금을 내는 대신 기부를 선택한다. 기부를 통해 사회적인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면 더 많은 혜택을 주고 더 의미있게 그 돈이 사용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목적사업이 분명하면 지속적으로 매달 혹은 매년 일정액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기부를 막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너무 학연과 지연이 강하고 결혼과 장례 등 경조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 하지만 도움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사람을 위해 지원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보자로 나온 분들의 이전 10년간 우리사회에 기부하고 자원봉사했던 것들을 조사해 유권자의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무슨 스펙 쌓듯이 기부하고 봉사하는 것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어릴 때부터 나누고 봉사하는 것들이 일상화된다면, 그리고 공직을 맡고 사회지도층이 되려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런 과정을 밟아야 된다는 것이 사회관행화된다면 지금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생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와 자원봉사 한번 안하고 오로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에게 공직을 맡겨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사회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 청년 실업 등 현 사회는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분열이 심각해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위험한 사회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사회구성원 다수의 시각이다. 이런 만큼 우리 사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더욱 필요한 상황인데 ,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보다 가진자인 사회지도층들이 솔선수범해서 내가 가진 것을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내놓은 움직임이 활성화돼야 하겠지요. 여기에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푸르메재단에 동참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이 기금을 내주시고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자원봉사해주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 문화가 높아지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본다. 늘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 조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를 만드는 것, 기부한 아름다운 손길을 널리 기억하는 것, 기부한 기금을 소중하고 투명하게 사용하는 것, 이런 것들이 잘 이루어지면 우리 기부 문화는 한층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글ㆍ사진=이기수 기자

백경학은
>>1963년 서울 출생 >>1982년 서울 영동고 졸업 >>1987년 연세대 졸업
>>1990~2000년 CBS 기자, 독일 뮌헨대학교 초빙 연구원, 한겨레신문 기자, 동아일보 기자
>>2002~2006년 옥토버훼스트대표이사 >>2005년~현재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저서 : 독일 동화 꼬마마녀(번역ㆍ길벗어린이 출판사ㆍ1996년), 독일 통일백서(공역ㆍ한겨레신문사ㆍ1997년)
독일 동화 꼬마유령(번역ㆍ길벗어린이 출판사ㆍ1997년), 사는 게 맛있다(공저ㆍ이끌리오 출판사ㆍ2006년)
인생은 원더풀(공저ㆍ다산책방ㆍ2007년)네가 있어 다행이야(공저, 창해출판사, 2008년)
효자동 구텐백(푸르메출판사, 2010년), 장애인복지 천국을 가다(공저, 2012년)
●수상 : 2010년 동아일보 선정 2020년을 빛낼 100인, 2014년 국민포장

출처 : http://www.jnilbo.com/read.php3?aid=1433084400470298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