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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역사와 문화의 거리 西村, 공익으로 물들다

[더 나은 미래] 역사와 문화의 거리 西村, 공익으로 물들다

2015-07-14

비영리단체들의 메카로 변신한 서촌에 가다
환경운동연합-아띠인력거 ‘미세먼지 캠페인’
품애-네트워크 고리, 지역주민 위한 사업 등 주변에 NGO 많아 단체 홍보·협업 쉬워
관광객 늘어나며 모금·기부 증가… 임대료 상승에 원주민 이탈 우려도

인왕산 자락 아래로 옹기종기 모인 한옥집, 지붕 사이로 뒤엉킨 전깃줄, 좁은 골목길의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들…. 통인동·옥인동·필운동 등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마을, 서촌(西村) 풍경이다.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 마을에 언젠가부터 비영리단체 사옥이 하나 둘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유니세프·아름다운재단·푸르메재단 등 유명 단체부터 이제 막 문을 연 국제구호·예술단체까지, 어느덧 수십 개의 공익단체가 골목마다 눈에 띌 정도다. 비영리 조직의 메카로 떠오른 서촌. 이유가 뭘까.

“느린 호흡으로 보면, 이곳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난 3일 만난 백시영 아띠인력거(지도 14) 공동대표는 건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서촌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풀어냈다. 시인 서정주가 머물면서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을 탄생시킨 보안여관,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특수교육기관인 국립서울농학교,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소재가 된 형제이발관 등 골목마다 역사의 숨결이 묻어있었다. 오르막길을 따라 인력거를 끌던 백 공동대표는 “우리 동네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면서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았다. 아띠인력거는 삼륜자전거로 서촌과 북촌 투어 및 해설을 진행(1시간에 2만5000원)하는 사회적기업으로, 2012년 설립됐다. 그는 “우리처럼 관광 및 교육적 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해 이곳에 자리 잡은 단체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아름지기재단(지도 12)은 2013년 북촌에서 서촌으로 사옥을 옮겼다. 전통문화의 보존 및 현대화 교육 사업을 진행하는 단체 성격에 꼭 맞는 장소라 판단했기 때문. 곽은정 아름지기재단 후원문화팀장은 “서촌에 오면서 전통 한옥 형태로 사옥을 지었는데, 따로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시민들이 이곳에 사랑방처럼 드나들며 전통문화 이야기를 나눌 정도”라고 귀띔했다. 다문화 아동의 역사문화 교육을 진행하는 비영리단체 ‘함께우리(지도 16)‘ 역시 인근에 종묘, 경복궁 등 역사 유적지 및 문화재가 많은 장점 때문에 2008년부터 서촌에 자리를 잡았다.

변화의 조짐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나타났다. 마포·북촌·홍대 인근 땅값이 몇 배로 뛰면서 임대료에 부담을 느낀 비영리단체들이 새로운 입지를 찾아나선 것. 지가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자연스레 서촌이 떠올랐다. 이에 참여연대(지도 9)는 2007년 안국동 임대사무소를 나와 은행 대출과 후원 기금으로 서촌에 5층짜리 건물을 세웠다. 지난해 10월 한국 사무소를 개소한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지도 6) 역시 고민 끝에 서촌에 입주했다. 채지원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담당자는 “처음엔 1953년 한국 전쟁 당시 옥스팜이 마포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했던 뜻깊은 역사가 있어서 마포에 자리 잡으려 했는데, 유흥가가 없는 조용한 공간을 찾다보니 서촌에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사대문 안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것도 한몫했다. 2004년 종로의 맥줏집 지하에서 출발한 푸르메재단(지도 5)은 2006년 사옥 이전과 함께 한 단계 도약했다. 고재춘 푸르메재단 실장은 “NGO가 많이 모인 곳에 오면 단체간 협력이 수월할 거라 여겼다”고 했다. 천호동, 풍납동을 거쳐 2012년 서촌에 들어온 월드투게더(지도 15)의 손성진 나눔개발팀 대리는 “우리처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정부, 다른 국제개발단체들과 협업이 많은 단체들은 사대문 안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위치의 특성상 사회 이슈 파악에 유리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박효원 아름다운재단(지도 12) 홍보팀 간사는 “시청, 광화문, 경복궁 등에서 캠페인이나 시위가 많아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사회 이슈와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공익단체가 한 곳에 모이자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7년 입주한 ‘서촌 터줏대감’ 환경운동연합(지도 10)은 아띠인력거와 함께 미세먼지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했다. 인력거에 공해 줄이기 캠페인 포스터를 붙여 홍보 효과를 더한 것. 유니세프한국위원회(지도 4)는 후원 행사가 열리면 푸르메재단이 장애인 직원을 채용해 운영하는 행복한 베이커리&카페에서 다과를 대량 구매한다.

이뿐만 아니다. 1980년 옥인동 서울교회에서 야학하던 젊은이들이 모여 세운 ‘마을공동체 품애·네트워크 고리(지도 11)‘는 서촌 주민과 단체들 간의 소통과 화합을 담당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환경운동연합·뿌리의집·참여연대·민들레 등 서촌 지역의 20여개 단체가 매달 모여 서로의 고민과 역량을 나누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선거 때엔 구청장의 정책 공약을 살펴보고 단체들이 공동으로 방향성을 제안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연말엔 친환경 음식 협동조합인 ‘에코밥상(지도 13)‘이 주축이 되어 서촌의 비영리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유기농 김장나눔을 한다. 최재숙 에코생협 대표는 “서촌에 합류하는 NGO가 많아지면서 김치뿐만 아니라 라면, 과일, 생필품 등을 패키지로 만드는 ‘통 큰’ 지원이 가능해졌다”면서 “벌써 5년째 지속돼 주민들로부터 호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김창선 뿌리의집(지도 3) 출판기획팀장은 “인근 비영리단체에 채용돼 일하는 입양인들이 많아 뿌리의집과 교류가 많다”고 덧붙였다. 뿌리의집은 2002년 해외 입양인들을 위해 단체 이사장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해 이들의 거주와 권익 향상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최근 관광객이 늘고 프렌차이즈 카페가 늘어나면서,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구도심 개발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원기준 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지도 2) 사무총장은 “하루가 다르게 세탁소, 이발소 등이 사라지고 상업 공간이 들어선다”면서 “서촌 고유의 멋과 매력이 흐려지지 않길 바란다”고 걱정했다.

반대로 사람들이 서촌에 몰려들면서 모금 및 홍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김미라 유니세프 후원팀장은 “관광객들이 유니세프 건물에 전시된 원빈 영상을 보고 후원하거나, 해외관광객들이 쓰고 남은 동전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와 문화가 숨쉬던 거리에 공익을 덧입힌 비영리단체들. 이들이 그리는 서촌의 ‘내일’이 기다려진다.

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김성언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박민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양승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윤선훈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이현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임신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3/201507130238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