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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에 1000원씩… 달리기 취미로 좋은일 해요

1㎞에 1000원씩… 달리기 취미로 좋은일 해요

2015.08.14 

[‘기부 러닝族’ 김승훈·정형조·박지훈씨]

마라톤·철인 3종경기 뛰며 후원자 모아 기부금 쌓아
그냥 돈만 내는 기부보다는 운동·동기부여 함께 돼 좋아
스포츠 브랜드도 동참 추세

“걷고 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한 걸음 뗄 때마다 어려운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게 ‘기부 러닝(running)’입니다.”

경희대 간호학과에 다니는 김승훈(23)씨에겐 달리는 게 기부다. 김씨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를 시작한 건 2013년 9월. 당시 레바논 동명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면서 아이들이 쓰레기통에서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모습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 하지만 구호단체에 한 번 돈을 내고 나선 다시 기부할 생각을 잊었다. 적은 돈이나마 기부를 계속 이어갈 순 없을까. 그래서 생각한 게 1㎞씩 달릴 때마다 자기 돈 1달러를 적립해 기부하는 아이디어다.

달리기와 기부를 연계한 ‘기부 러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김승훈(왼쪽)씨는 후원자들과 함께 2013년부터 수차례
마라톤에 참가, 약 4000만원을 기부했다. 정형조(가운데)씨는 1㎞당 달리기는 1000원, 산악스키는 2000원,수영은
5000원씩 기부한다는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 ‘기부 러닝’을 하고 있는 박지훈(오른쪽)
씨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착한 취미’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김승훈·정형조·박지훈씨 제공

김씨는 그 뒤 6개월 동안 1000㎞를 뛰어 1000달러를 유엔난민기구(UNHCR)에 기부했다. 작년 2월 전역한 김씨는 베이루트 마라톤(레바논), 골드코스트 마라톤(호주), 원마일클로저(체코~영국) 등 달리기 대회에 참가해 250만원을 기부했다. 원마일클로저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4000여만원의 기부금도 모았다. 작년엔 ‘스포츠로 기부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다. 이 페이지 회원 1100명은 김씨처럼 매일 달린 거리에 비례해 자기 돈으로 기부금을 쌓고 있다.

20·3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달리기와 기부를 연계한 ‘기부 러닝’ 바람이 불고 있다. 그냥 돈만 내는 기부는 일과성에 그치기 쉽지만, 취미인 달리기나 사이클, 수영, 등산 같은 운동과 연계하면 건강을 챙기면서 기부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기부 러너(runner)’ 김승훈씨는 “건강을 지키면서 남을 위한 기부를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며 “운동과 기부를 연계하니 몸이 기부를 잊지 않게 하더라”고 했다.

젊은 층에서 기부 러닝이 유행하는 건 작은 일에도 동기가 부여돼야 행동하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으려는 젊은이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부 러너들은 말한다. 동갑내기 친구인 회사원 정형조(30)씨와 김영랑(30)씨는 각각 2011년, 2014년부터 수영·사이클링·등산 등을 하면서 기부를 시작했다. 1㎞에 달리기는 1000원, 산악스키는 2000원, 수영은 5000원씩 기부하는 식이다. 정씨는 여태껏 170만원가량을, 김씨는 20만원가량을 모았다. 정씨는 “적은 돈이라도 그냥 돈만 내는 기부는 흥미도 없고 마음에 와 닿지 않더라”며 “기부와 연계하니 운동을 할 때도 동기가 부여된다”고 했다.

박지훈(41)씨도 30대에 들어선 2006년부터 장애아동을 위한 기부 러닝을 해왔다. 박씨에겐 뇌가 굳어가는 ‘스터지 웨버 증후군’이란 난치병을 앓는 아들(12)이 있다. 박씨는 푸르메재단과 함께 2013년부터 매해 아들의 이름을 딴 ‘철인 3종 경기’ 대회를 열고 참가자들이 낸 참가비 전액을 장애아동 재활병원을 만드는 데 기부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3박 4일 일정으로 자전거 국토 종주(부산~서울)를 했다. 국토 종주를 하면서 박씨는 SNS를 통해 1㎞당 100~1만원의 기부를 받아 총 140만원을 기부했다. 박씨는 “운동은 나에게 기부와 연계된 ‘착한 취미’란 의미가 있었기에 오래 이어올 수 있었다”고 했다.

젊은 ‘기부 러너’들이 늘면서 젊은 층 고객을 잡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는 스포츠용품 업체들도 기부 러닝 이벤트를 열고 있다. 지난 5월 한 스포츠용품 브랜드는 서울에서 달리기 행사를 열어 참가자 2400명이 낸 참가비 가운데 2400만원을 저소득층 생활체육 기금으로 기부했다. 다른 스포츠 브랜드는 평소 자사 애플리케이션에 달린 거리를 입력해온 러너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달리기 대회를 열었다. 이 브랜드는 이날 완주한 참가자들이 평소 입력한 누적 거리를 돈으로 환산해 1468만원을 한 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이옥진 기자
임희강 인턴기자(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수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4/20150814002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