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만명 듣는 팟캐스트 되면 나눔도 이슈가 되겠죠?"

[더 나은 미래] "10만명 듣는 팟캐스트 되면 나눔도 이슈가 되겠죠?"

2015-09-08

'기부스' 메인 MC 션&정찬우

개그맨과 가수가 만나 기부를 논한다? 국내 최초 기부 팟캐스트 ‘기부스(출연자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홍보하는 대신 현금·현물·재능을 기부하는 방송)’를 진행하는 컬투 정찬우와 가수 션의 이야기다. ‘이왕이면 현금이 좋다’며 기부를 권하는 정찬우의 재치 만점 멘트에 기부 경력 10년차 션의 생활 속 나눔 노하우가 덧입혀진다. 성격도, 말투도 다른 두 사람의 ‘케미(화학적 궁합)’ 덕분일까. 한참을 배꼽 잡고 웃다가도 가슴 찡한 기부 스토리에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상 속 재미난 기부를 전파하기 위해 팟캐스트를 시작한 지 1년. 두 사람은 오늘도 방송에 나와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찬우션(지누션을 본떠 만든 듀오 이름)’이에요!”

재밌을수록 기부 파급효과도 커져
‘아이스버킷 챌린지’ 하며 느꼈어요

"말 못하는 제가 밤새워 이야기할 수 있는 세 가지가 있어요. 힙합, 신앙 그리고 기부. '기부스'에만 오면 제 입담이 살아나는 이유죠(웃음)."

힙합가수 션에겐 '기부 아이콘'이란 이름표가 항상 따라다닌다. 지금까지 그가 기부한 금액은 총 38억원. 국내외 후원 아동 수만 800명에 달한다. 루게릭병 전문 요양병원 건립을 위해 매년 2~3회 희망콘서트를 열어 수익금을 기부하고, 어린이재활병원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후원자가 낸 기부금 1만원당 1㎞씩 달린다. 이렇게 그가 달린 거리만 약 1200㎞. 작년부턴 쉽고 재미난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 팟캐스트 '기부스'의 메인 MC로 마이크를 잡았다. 인터뷰가 진행된 지난 1일 역시 션은 이천에 있는 아동복지시설 '성애원'의 증축 기금 마련을 위한 토크 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기부하기 위해 버는 남자, 션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기부를 하나요?"

"우리 모두 크기는 다르지만 자기만의 행복 컵이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의 컵이 모두 채워지면 다음 단계는 나눔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혜영이와 결혼한 날 행복의 컵이 가득 채워져서 나눔을 시작한 것처럼요."

―많은 이가 궁금해한다. 션은 돈이 많아서 기부하냐고.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지금까지 YG에서 받은 배당금은 '0원'이다(웃음). YG 주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얼마 전 이사가 되면서 YG 주식을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받은 게 전부다. 그동안 그냥 열심히 살았다. 의류 사업을 꾸준히 해왔고. 살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기부한 액수(38억원)를 생각해보니 엄청 많이 벌었더라(웃음)."

―시민들이 기부하는 만큼 달리는 '굿 액션 by 션' 캠페인처럼 기부 문화 확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강연이나 토크 콘서트를 할 때마다 색다른 시도를 해왔다. 참석자 수만큼 만원권 지폐를 준비하고, 강연 끝날 때쯤 '원하는 곳에 어디든 사용하라'고 나눠줬다. 강연 직후 지갑에 있는 돈까지 꺼내와서 '기부해달라'고 한 사람도 있었고, 제가 하는 방송에 찾아와 '1년 전에 만원을 받은 뒤로 나눔을 시작했다'면서 10만원을 가져온 분도 있었다. 1명의 기부가 '우리'의 나눔으로 확산된 것이다."

―'기부스'를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인가.

"작년 아이스버킷 챌린지 덕분에 승일희망재단에 10억원이 모여서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분들의 큰 희망이 됐다. 그때 기부가 재미있을수록 파급 효과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 '기부스'가 10만명이 듣는 팟캐스트가 된다면 나눔이 정말 이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기부스에 출연한 한 남성분이 '방송을 듣고 나 같은 사람도 기부할 수 있을까 했던 고정관념이 깨졌다'며, 여자 친구와 데이트 비용을 아껴서 매달 기부하신다."

―기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어떤 나눔을 권하고 싶은가.

"쇼핑을 할 때도 가격 비교하는 것처럼 기부를 할 때도 시간을 투자해 열심히 알아봐야 한다. 나도 1년 넘게 지켜보다가 기부를 한 곳이 대부분이다. 홍보대사 요청이 올 때도 단순히 '얼굴마담'이 아니라 내 시간과 모든 걸 투자하면서 도울 수 있을지 면밀히 고민해서 승낙한다. 나눔의 선순환도 중요하다. 아이스버킷챌린지로 승일희망재단에 10억원이 모였을때 그중 1억원을 희귀난치병 아동 수술비를 지원하는 소규모 단체에 기부했다. 푸르메재단과 1만원 나눔을 확산하는 '만원의 기적(하루 1만원씩 기부하는 캠페인)'을 시작하자, 제가 홍보대사로 있는 컴패션 직원분들이 캠페인에 참여해주셨고, 홀트아동복지회에선 바자회를 통해 모인 금액 730만원을 매년 보내온다. 재단끼리 서로서로 나누는 선순환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네 자녀도 아빠의 나눔DNA를 물려받았나.

"우리 아이들은 나누는 게 자연스럽다. 지난해 연탄 150만장이 부족하단 이야길 듣고 5만장(2500만원 상당)을 기부하기로 하고, 아이들에게 '만원씩 아빠랑 같이 연탄 기부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하음이가 '할아버지, 할머니 위해서 다 줄래요'하면서 1년 모은 저금통을 건네더라. 하음이의 예쁜 마음에 나도 10만장(5000만원 상당)으로 기부금을 두 배로 올렸다. 나눔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배우는 것 같다."

우리 방송 한 시간만 들어보세요
기부에 닫혔던 마음이 열릴 겁니다

"삥 뜯어오는 게 제 역할이죠(웃음)."

최근 '컬투' 정찬우에게 새로운 꼬리표가 붙었다. 방송계에서 그는 기부자를 늘리는 일명 '펀드레이저(Fundraiser·기부 모금 전문가)'로 통한다. 기부 팟캐스트 '기부스'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변화다. "기부하실래요?" 정찬우의 말 한마디에 중국에서 유통회사를 하는 한 지인은 1억원어치 화장품을, 소셜커머스 회사에 다니는 후배는 신발 1억원어치를 선뜻 내놓았다. 정찬우 자신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여러 번 고액을 기부해왔다. '큰손 기부'를 이끌어내는 노하우를 묻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적은 금액이라도 많은 분이 기부에 동참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기부스를 하는 이유죠."

―기부 팟캐스트(기부스)는 어떻게 시작됐나.

"9년 전쯤인가. US오픈 테니스대회에서 7위 할 정도로 실력이 출중한 장애인 선수 이야길 들었다. 비행기 값이 없어 대회 참가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정부 지원도 기업 후원도 받지 못했다더라. 안타까운 마음에 1000만원을 기부했는데, 그때부터 기부하는 방송이 필요하단 생각을 했다.

당시 내가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 중간에 기부 사연을 넣으려는데 장벽이 많았다. 수많은 청취자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는지, 익명 기부자의 돈은 어떻게 할지 보증이 필요하다고 해서 여러 비영리 단체를 만났다. 그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더라. 기부금이 잘 전달됐는지 방송에 담아야 하는데, 매번 현장에 가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려니 일이 커졌다. 어쩔 수 없이 포기했는데, 몇 년 뒤 팟캐스트(인터넷 방송)가 뜨더라. '바로 이거다' 싶었다. 팟캐스트는 광고법이 없어서 라디오보다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기획부터 멤버 섭외까지 전부 도맡았다고 들었다.

"기부스 콘셉트는 내 경험에서 비롯됐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자사 제품에 대한 홍보 니즈가 크다. 나 역시 컬투 치킨, 화장품 쇼핑몰 '우즈플리즈' 사업을 하면서 홍보 창구가 다양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에 누구든지 방송에 출연해 자기 회사를 홍보하고, 홍보비 대신 원하는 만큼 기부하는 콘셉트를 짰다. 그러곤 '같이 하자'며 3년 전부터 점 찍어둔 지인들을 고정 패널로 하나 둘 섭외했다. 방송이 진행되면서 고정 패널들이 직접 나서서 기부자를 섭외하고, 일일호프 기금을 기부하는 등 나보다 더 열심이다(웃음)."

―기부스 출연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부자는 누구인가.

"프라임마리스(부평점) 과장님이 기부스에 기부한 뷔페 30인분이 보육원에 전달됐는데, 얼마 뒤 해당 보육원 선생님과 아이들이 '고맙다'면서 기부스를 찾아왔다. 그러곤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웃을 위해 기부를 하더라. 감동받아 보육원에 컬투 치킨을 보내줬다. 한번은 성인용품 회사 사장님이 현금과 함께 300만원어치 성인용품을 기부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성인용품을 기부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다가 친한 사회복지사분께 전달했는데, 장애인복지관에서 순식간에 동이 났다더라. 나눔에 대한 편견이 깨어진 사례였다."

―컬투쇼만큼 '기부스'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컬투쇼보다 기부스가 더 재미있다. 주변에서도 다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별다른 심의 규정이 없다 보니 욕을 해도 되고, 진짜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어서 멘트도 더 재미있게 나간다. 돈 한 푼 버는 것 없지만 기부스 방송할 때가 제일 신난다. 기부스는 아직 순위가 낮지만 상위권 팟캐스트만 해도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다. TV나 라디오는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하는데, 팟캐스트는 집중하면서 듣는 방송이라 홍보 효과가 다르다. 게다가 누적 방송이라 언제든지 1회부터 다시 들을 수 있어서 향후 광고 시장이 더 열릴 것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방송하다 보면 기부스의 진가가 널리 알려질 거라 확신한다."

―기부스의 향후 계획은.

"일단 지금처럼 '기부는 어렵다'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는 방송을 계속할 것이다. 기부스를 통해 대기업의 나눔을 경쟁시킬 수 있는 아이템도 생각해놨다(웃음). 나중엔 기부스를 통해 재단을 만드는 게 꿈이다. 누구든지 편하게 문을 두드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재단.

기부스 기금을 만드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기부를 해?'란 생각이 드는 분들은 지금 당장 기부스를 들어보시라. 아마 한 시간 내로 마음이 바뀔 거다."

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9/07/20150907024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