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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요’와 장자와 비행기

‘고생했어요‘라는 인사

혁명을 제외한다면(체 게바라에게는 미안!), 세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정치’일게다. 바야흐로 정치의 꽃, 선거의 계절이면, 공약집 읽기에 몰두한다. 공약집이란 게, 5년간의 유효기간을 채우지도 못할 과대광고 전단지에 불과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공약집이 5년간 유효한, 무거운 채무이행계약서가 되기를 기대한다. 왜냐면 이 공약집을 5년 내내 집요하게 흔들며 들이대는 이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 열혈대오에 가끔 끼겠거니와, 나는 적어도 수십 명의 확실한 ‘꾼’들을 알고 있다.

정당에는 대개 장애인위원회가 있는데, 그들은 장애와 관련된 이슈 말고도 모든 사회적 이슈에 매우 열심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온몸으로 겪다보니 세상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까닭이다. 그 ‘꾼’들의 단체 톡방에서는 매일같이 수십 건 수백 건씩의 대화가 뜨겁게 오간다.

먼 곳에서 정당의 중요 행사를 하루 종일 치루고 돌아간 날이었다. 헤어질 때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늦은 인사라도 하려고 단체 톡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예, 고생하셨어요.”

세 손가락
그걸 보는 순간, 그 말의 무게가 커다란 바위처럼 쿵, 내려앉았다. 건성으로 그저 보내는 ‘고생했어요’와, 진짜로 고생한 이들끼리 건네는 ‘고생했어요’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남들보다 먼 길을 돌고, 남들보다 불편한 길을 오가고, 앉기 불편한 식당에서 먹고, 불편한 자리에 앉고, 불편한 자세로 서서 버틴 이들에게 하루는 정말로 ‘고생하셨습니다’가 되는 것이다.

이분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고생하셨습니다’를 보고서, 이제 앞으로는 이 인사말을 그저 아무렇게나 쓰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하지 않은 사람에게 인사치레로 고생했다고 하는 건 서로 간에 민망한 일이다. 진짜로 고생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서 해야 하는 인사말인 것이다. 더구나 고생하지 않아도 될 일에 생잡이로 고생하게 만드는 못난 세상에서 사는 일이니, 얼마나 고생스러운가.

견디고 참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일테면 우리 엄마가 기운이 펄펄 나고 잔소리도 호령같이 할 때라면 내게는 엄마의 고집을 참는 일이 못 견디게 비굴할 것이다. 우리 엄마가 목소리에 쇳소리가 새고 때로는 공연히 자식 눈치에 근거 없이 서러워하게 되었다면, 그 때는 내가 엄마를 참는 일이 그리 힘겹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는 엄마가 나를 참아주어야 옳았고, 뒤에서는 내가 엄마를 참아주는 게 옳다. 요컨대 둘 사이에서 불리하지 않은 쪽이 견디고 참아주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때 견디고 참는 것을 ‘베풂’과 ‘시혜’라고 하지 않고 ‘예의’라고 해야 한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은 모름지기 ‘섬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고생한 동료에게 ‘고생했어요’라고 인사하고 있는 그분들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사람을 잘 섬기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내 예의를 잘 차리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나는 얼마나 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는가. 나는 얼마나 불편한 그들을 견뎌주는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성과 끌어주는 여성

누구라고 침을 흘려가며 어눌하게 말하고 싶을까.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지 않고 싶을까. 눈빛만으로도 남의 말을 금세 알아듣고, 웅변으로 남을 설복시키고 싶지 않을까. 그런 숱한 불편함을 무릅쓰고 세상에서 오늘 하루도 ‘고생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예의를 갖췄는가.

참아주는 것, 모른 체 해주는 것, 별스럽게 보아주지 않는 것, 그게 배려이고 예의이다. 그러다 결국엔 일부러 모른 체 하지 않아도 그 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그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또한 배려이고 예의이다.

장자가 말했다, 장애란 가짜라고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작정하고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해보자. 동양 고전 가운데 ‘장자(莊子)’에는 규모가 큰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장자가 그렇게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 얘기들을 하는 것은 허풍을 떨자는 게 아니라, 작은 것을 큰 것인 양 착각하지 말라는 뜻에서다. 무엇이든 큰 틀에서 보면, 본질에서 보자면 우리가 어쭙잖게 나누는 차이나 차별이란 그저 사소하고 어리석은 구분에 불과하기 마련이다. 물론 작은 차이일망정 그것이 존재와 존재를 나누는 것일 때는 우주를 가르는 것만큼 커다란 의미일 테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인 양 착각하는 건 큰 병통이고 비극이다.

장자는 장애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아니, 장자에게는 애초에 장애라는 개념이 없다. 굽거나 휘거나 곧거나 낮은 모든 나무들이 모여 울창하고 다채로운 숲을 이루듯이,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듯이,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설사 독특하고 낯선 모습일지라도 비정상이라고 이름붙일 일은 아닌 것이다.

군중

장자에는 장애인들이 꽤 등장한다. ‘지리소’라는 이는 ‘턱이 배꼽 아래에 숨어 있고, 어깨는 이마보다 높고,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이 위에 있으며, 두 넓적다리는 옆구리에 붙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장자를 그를 보고, 제 힘으로 너끈히 세상을 살아가고 천수를 누리는 덕이 있다고 칭송한다. 다리를 저는 ‘신도가’라는 인물도 있는데, 동료 제자가 자신과 함께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자 신도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선생과 지낸 지 19년이 되었는데, 아직 한 번도 내가 절름발이라는 것을 몰랐다….”

‘인기지리무순’은 발을 저는데다 척추장애와 구순열이 있고, ‘옹앙대영’은 커다란 혹이 붙어 있다. <장자>에는 이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위나라 영공은 인기지리무순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기뻐하여 그 이후로 온전한 사람을 보면 목이 가늘고 길다고 여겼으며, 제나라 환공은 옹앙대영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기뻐하여 그 이후로 온전한 사람을 보면 목이 가늘고 길다고 여겼다. 그러니 덕이 뛰어나면 외형은 잊어버리는데, 세상 사람들은 잊어버려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리니, 이것을 일러 정말 잊어버렸다고 한다’
장자의 결론은 이것이다. “아득히 작구나, 인간에 속한 것이여! 엄청나게 크도다, 홀로 자연의 도를 이룸이여!“

겉으로 보이는 결핍을 보면 내면에 가득한 덕을 보지 못한다. 이때 말하는 덕이란 인격적인 수양을 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본질, 우주에 속한 본질이 바로 덕이다. 본질의 세상에서 볼 때 모든 차이는 본질을 구성하는 숱한 다양성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니 인간이 멋대로 규정한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이천오백 년 전에 장자가 이미 말했지 않은가, 장애란 없다고, 그건 가짜라고.

그리고 추신 : 전세비행기

네 명의 여인과 열다섯 먹은 소녀의 여행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지요. 우리는 여행을 하다가 그만 바람이 들어서 바람이 불때마다 여행을 모의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몸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멀리 달아나는 발달장애 자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기가 어렵다는 한탄을 했습니다. 그럼 뭐, 우리끼리 전세기를 타고 가면 되지 않을까.

불쑥 튀어나온 이 말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또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5월에 전세기를 타고 아름다운 제주에 닿을 겁니다. 게다가 시끌벅적하게 갈 겁니다. 여지껏 비행기를 타고 싶었으나 주변에 불편을 끼칠까봐 지레 포기해서 타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합니다. 주변이 불편해 하지 않으면, 오히려 즐겁게 도와주면 해결이 되는 단순한 문제일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입니다. 모두의 마음속에 들어있던 동화가 한 편 시작되는 거지요. 이 어설픈 계획은 성공할 거라는 예감이 듭니다.

비행기

정갈한 숙소, 소박한 식사, 넓은 바닷가, 아름다운 오름만 있으면 됩니다. 맑은 공기, 눈부신 파도만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 그 곳은 제주니까요. 누군가는 달려와 기타를 쳐주기도 할테죠. 벌써 따뜻해진 제주의 푸른 바닷물에 발을 적신 우리는 밤에는 맛있는 야참을 먹을 거예요. 여기저기 소리치고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붙잡으러 다니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잠들기도 아까워하겠지요. 이 근사한 스토리를, 우리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환대받은 이 멋진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할 겁니다.

우리가 근사하게 전세기로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 즈음이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여줄 겁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를 붙잡으러 다니는 그 어미들을 보면서 미소와 함께 힘내라 웃어줄 겁니다. 세상은 그런 곳이니까요. 그래서 참 설렙니다.

*글= 김종옥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동작지회장)

김종옥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김종옥은, 가끔 철학 인문학 관련 책을 쓰지만, 가장 쓰고 싶어 하는 SF소설은 아직 쓰지 못했다. 가끔 인문학 강의도 하고 지역 내 마을사람들 일에 두루 참견하며 바쁜 척하고 지내고 있다. 쓰임과 즐김이 있는 좌파적 삶을 살고 싶어 하며, 매일같이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철학의 시작> <처음 만나는 공자> <공자 지하철을 타다(공저)> <장자 사기를 당하다>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곳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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