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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해

[푸르메인연] 세월호 유가족 故오영석 엄마 권미화 기부자

 

4월. 다시 봄이지만, 아직은 오지 않은 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년이 다 되어갑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 없이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가라앉은 진실을 밝혀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입니다.

3년 전, 세월호 유가족은 푸르메재단 맞은편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는 천막 농성을 76일 동안 진행했습니다. 고 오영석 군 엄마 권미화(42) 씨도 한여름 쏟아지는 땡볕에 까맣게 그을리도록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국회로, 광화문광장으로, 거리로 농성과 집회를 이어간 그 이듬해, 푸르메재단에 조용히 와서 정기기부를 신청한 권미화 씨. 기부신청서에는 ‘살아갈 이유가 될 것 같아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눔으로 함께하는 故오영석 엄마 권미화 씨.
세월호 참사 이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눔으로 함께하는 故오영석 엄마 권미화 씨.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안산에서 광화문으로 올 때마다 재단에 들러 반가운 인사를 건네던 권미화 씨를 이번엔 광장으로 만나러 갔습니다. 권미화 씨는 아들의 학생증을 여전히 목에 건 채 피켓을 들고 서명을 받느라 분주했습니다. 추모 팔찌며 열쇠고리의 노란색은 3년의 세월이 스며들어 더욱 짙어진 것 같았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온 3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어요. 아이들을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알기 위해 억울함을 꾹 눌러 담고 밟히면 다시 일어났어요. 앞으로 나아가야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라고 권미화 씨는 말합니다.

어딜 가든 영석이의 학생증과 명찰을 달고 다니는 권미화 씨.
어딜 가든 영석이의 학생증과 명찰을 달고 다니는 권미화 씨.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낸 뒤, 전 세계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위로와 힘을 받으면서 주변에 아프고 힘든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국가의 폭력과 무관심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찾아가서 지지해주고 며칠씩 밤을 지새우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발만 동동 굴렀는데 이제는 몸이 먼저 말을 해요. 가만히 있다간 또 누군가 다치고 목숨을 잃을 테니까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해 억울한 피해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저항할 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태를 막을 수 있습니다.”

살아갈 이유, 나눔

권미화 씨는 푸르메재단에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정기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천막 농성하던 당시 식당, 화장실, 샤워실을 열어둔 푸르메재단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다고.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모든 걸 송두리째 빼앗긴 상황을 겪으면서 정신적인 장애를 갖게 됐잖아요. 집회할 때 재단 건물 주변이 차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휠체어가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단 한 번 싫은 내색 없이 먹고 씻는 문제를 배려해주고 안아주셨어요. 장애인 부모들도 우리를 자신의 일처럼 바라봐줬고요.”

슬픔과 분노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상태에서도 권미화 씨는 후원 물품으로 들어온 과일과 음식을 덜어내 연신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했습니다. “푸르메재단은 ‘과거형’이 아니라 ‘진행형’인 곳이에요. 여전히 세월호를 생각해주는 백경학 상임이사님과 직원들이 있고 우리를 힘껏 받쳐주는 장애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엄마의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던 영석이의 어릴 적 모습.
세상에서 엄마의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던 영석이의 어릴 적 모습.

생전에 영석이는 부모님한테 받은 사랑을 나누는 밝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비 오는 날 친구에게 우산을 양보하고,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를 모셔다드리고,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대신해 멍이 들도록 맞고, 퇴근한 엄마가 힘들까봐 화장실 청소부터 설거지까지 해놓곤 했습니다. ‘어머니 안 만났으면 어쩔 뻔 했어요’라며 세상에서 엄마 웃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던 영석이는 세월호 침몰 닷새 만에 돌아왔습니다. 권미화 씨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늘 품고 다니는 영석이의 사진들을 어루만지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훔칩니다.

“우리 아이를 통해서 다른 세상을 보게 됐어요. 장애인, 청소년, 아픈 이들까지 관심의 영역이 점차 넓어졌죠. 평범한 엄마 아빠들이 아이들을 잃고 나서 많은 문제들에 대해 행동하게 됐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싶습니다. 영석이도 그저 가만히 있는 엄마보다는 사람들 속에서 웃고 얘기하며 끝까지 싸워서 해내는 엄마를 더 좋아할 거예요.” 매월 장애인을 위해 써달라며 보내는 기부금에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사무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멀지만 가야할 길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권미화 씨는 우리사회의 품이 보다 넓어지길 간절히 꿈꿉니다. “저마다의 다른 모양과 생김새 그대로를 존중하길 바랍니다. 약속을 책임지고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화문광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목소리 내고 있는 권미화 씨.
광화문광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목소리 내고 있는 권미화 씨.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멀고도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잘못된 길을 반복하지 않도록 낱낱이 투명하게 공개해서 기억할 수 있어야죠. 세월호 참사는 다시는 겪어서는 안 될 마지막 참사로 남아야 해요.” 세월호 희생자 추모시설이자 삶과 죽음을 이어주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공간인 416안전공원(가칭)을 아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안산에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세월호가 인양됐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유가족들의 행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헤어지기 전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 200여 개가 담긴 봉지를 쥐어준 권미화 씨의 거칠고도 단단한 손. 밝게 웃는 간호조무사가 꿈이었던 영석이를 대신해 ‘시대의 절망을 치유하는 손’으로 계속 함께할 것입니다.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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